“근대인은 신체의 중요성을 잊고 있다.” 불과 150년 전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몸이 정신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세태를 지적했다. 이원론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던 서구 역사에서 인간의 몸은 오랫동안 정신에 종속된 하위 존재로 홀대당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몸의 가치는 급부상했다. 현대 사회에서 ‘몸’에 대한 관심은 숭배에 가까울 만큼 뜨겁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동경을 넘어 운동, 수술 등으로 원하는 몸을 만드는 시대가 열렸다.
미술사에서도 ‘몸’은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인간의 ‘몸’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였다. 오랜 시간 미학적 대상이었던 몸은 현대미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의 도구가 됐다. 때로 몸을 해체하고 조립하는 현대미술은 대중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몸을 ‘일부러 불편하게’ 표현하는 현대미술에 좀 더 쉽게 다가서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는 8월 19일까지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일부러 불편하게’展(전)이다.
이번 전시는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행사 중 하나다. 스포츠와 예술의 접점인 ‘몸’에 주목하려는 의도다. 현대미술이 일부러 불편하게 표현하는 몸이 도리어 우리에게 삶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일깨워준다는 것을 소개한다. 13명의 작가는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관람자에게 불쾌하지만 매혹적인, 반전 있는 몸의 세계를 소개한다.
예를 들어, 고길숙 작가는 인간은 좋든 싫든 집단 속에서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비디오 퍼포먼스를 통해 두 사람의 얼굴이 맞닿는 상황을 연출한다. ‘나와 당신이 편안해지는 거리는 얼마만큼일까’라는 제목처럼 낯선 이와 얼굴을 맞댄 ‘불편한’ 상황이 불러오는 심리적 변화에 주목한다.
또 한계륜 작가는 19세기 프랑스의 7월 혁명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재해석해 ‘민중이 끌리는 더 자유로운 여신’을 선보였다. ‘누드의 민망함에 관한 연구’의 일환인 이번 작업은 직접 들라크루아의 여신 누드를 실천해 보고, 여신이 된 기분이기에 민망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민망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 결국 ‘민중이 끌리는 더 자유로운 여신’을 선보였다.
신화를 재해석한 듯한 그림도 보인다.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혔듯이 이희명 작가의 ‘희생제의’에는 비슷한 묘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절벽에 묶여 고통을 당하는 이는 ‘여성’으로 묘사됐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희생과 모순적 침묵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을 표현했다. 작가는 고전 속에서 신들에게 제물로 희생되는 처녀 이야기를 작품에 녹여냈다고 설명한다.
작가 13명은 우리가 친숙하게 여겼던 몸을 해체하고 왜곡하며 새로운 의미를 던진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숭배 속에 담긴 부조리함을 ‘일부러 불편하게’ 표현한 몸으로 들춰낸다.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