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가난한 청춘들은 늘 옥탑방에 산다. 반지하 원룸에 사는 가난한 청춘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겠지만 그래도 드라마는 늘 옥탑방을 고집한다.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옥상 난간에 기대어 도시의 빌딩숲을 내려다보며 고함 한 번 질러 본다거나, 옥상 바닥에 놓인 평상에 왁자지껄 둘러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청춘 드라마의 흔해 빠진 장면을 연출하려면 아무래도 반지하 원룸보다야 옥탑방이 제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양동 옥탑방에서 한 달 살기 중이다. 서민의 일상적 삶 속에 들어가 현장에서 직접 문제 해결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취지라 한다. 그런데 이를 향한 삐딱한 시선이 적지 않다. 서민 코스프레 이벤트이며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쇼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억지스럽다. 박원순 시장은 역대 민선 서울시장 중 가장 서민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온 인물이다. 옥탑방 이벤트를 통해 새삼스럽게 서민 코스프레를 할 이유는 없다.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라 하기엔 너무 이르다.
물론 그곳에 쭉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딱 한 달 동안만 생활을 하겠다니 이벤트성 정치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정치인의 공개된 행위는 어차피 대부분 이벤트성 정치쇼이다. 그러니 그 자체를 문제시할 일도 아니다. 선거철이면 무수히 많은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을 찾아가 어묵과 김밥을 꾸역꾸역 먹는다.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어묵과 김밥을 즐기는 똑같은 식성을 가졌다고 생각할 유권자는 아무도 없다. 그냥 그림이 나올 만한 이벤트성 정치쇼라 생각하고 인정할 뿐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노인을 끌어안고, 장애인의 몸을 씻겨주는 행동을 보이지만 국민들은 이 역시 그림이 나올 만한 이벤트성 정치쇼라 생각하고 인정할 뿐이다. 옥탑방 한 달 살기만 굳이 색안경을 끼고 삐딱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식상한 어묵과 김밥 이벤트보다는 옥탑방 이벤트가 신선하다.
정치인의 이벤트성 정치쇼는 어떤 행위를 했느냐가 아니라 그 행위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느냐를 두고 평가해야 한다. 재래시장에서 어묵과 김밥 한 번 먹는다고 서민의 고단한 일상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노인을 끌어안고 장애인의 몸 한 번 씻겨준다고 사회적 약자의 고충을 제대로 이해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런 행동들이 선거철에만 집중된다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전략적 행동일 뿐이다. 여기에 담긴 메시지는 “한 표 줍쇼”이다.
반면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 한 달 살기에 담긴 메시지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시민운동 시절부터 일관되게 지켜왔던 행동철학이다. 서울시장의 옥탑방 한 달 살기는 지금 평가할 일이 아니다. 한 달이 지난 후 그가 어떤 해답을 찾아냈는지를 보고 평가해도 늦지 않다. 지금 시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다. 설령 이벤트성이라 해도 이런 정치쇼를 보여준 서울시장은 그가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