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은 이제 더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5년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주제가로 출시된 ‘픽 미(Pick Me)’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은 주류 시장을 빠르게 접수했다. 이후 많은 아이돌 그룹이 트로피컬 하우스, 뭄바톤, 퓨처 베이스 같은 전자음악 하위 장르를 골격으로 취한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확실히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 대세다.
지금 수준의 규모는 아니지만 과거에도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신해철, 넥스트, 듀스는 각각 ‘나에게 쓰는 편지’, ‘도시인’, ‘세상 속에서 그댄’으로 힙합과 하우스 음악을 접목한 힙 하우스 장르를 소화하며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을 선전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환상 속의 그대’ 위주로 꾸려 1992년에 낸 리믹스 앨범은 테크노 음악을 익숙하게 한 최고의 홍보물이었다. 이 작품들이 많은 관심을 받음에 따라 전자음을 주성분으로 한 댄스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김학규, 천성일, 한상일, 홍종구로 구성된 노이즈(Noise)도 그 시절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유행을 선도한 주역 중 하나다. 1993년 출시된 그룹의 1집 <사운드 쇼크>(Sound Shock)는 순도 100%의 전자음악 앨범은 아니었다. R&B(‘고개 숙인 나에게’)와 전자음을 조금 들인 힙합(‘네가 떠난 자리에’)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음악방송을 통해 선보인 ‘너에게 원한 건’과 ‘변명’이 히트해 노이즈는 하우스, 테크노 음악의 전파자로 여겨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노이즈의 멤버 구성은 댄스음악과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김학규와 한상일은 전속 댄서일 뿐이었다. 보컬을 담당한 천성일과 홍종구는 미성을 소유했으며, 노이즈에 합류하기 전 발라드, 팝 가수로 활동했다. 래핑에 남다른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듯 약점이 존재했지만 노이즈는 성공했고 전자음악도 대중화됐다. 어찌보면 반주를 손질한 원창준과 프로듀서 김창환이 이를 일궈낸 셈이다.
키보드 연주자 강린, 기타리스트 고석영, 나중에 토이의 객원 보컬로 유명해진 김형중으로 이뤄진 이오스(E.O.S)의 데뷔 앨범 <꿈 환상 그리고 착각>도 우리나라 전자음악의 1차 성장기에서 돋보이는 작품이다. 모든 노래를 작곡·편곡한 안윤영은 짜릿한 루프, 부드러우면서도 분명한 고저를 그리는 진행으로 곡에 세련미를 부여했다. 더불어 테크노, 유로댄스, 하우스 등 여러 양식을 아울러 앨범은 다채로움도 갖췄다.
한편 그룹의 후견인 신해철은 현실적이고 진취적인 내용의 가사를 제공해 노래들이 현대성과 청춘성을 내보이게끔 했다. 윤상의 단짝 작사가 박창학이 지은 노랫말은 추상성과 서정성을 나타냈다. 둘의 성격이 다른 가사가 한데 모여 앨범은 강함과 순함을 고르게 표출하게 됐다.
출시된 지 25년이나 지났음에도 두 앨범은 전혀 촌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현재 대대적으로 유행하는 장르가 아닐 뿐 노래들이 지닌 사운드는 여전히 명쾌하고 고급스럽다. 그 옛날 우리에게도 이렇게 멋들어진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이 있었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