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한 욕 잔치다. 애써 좋게 포장하면 그렇다. 실상은 볼썽사나운 속언의 쑥대밭이다. 요즘 힙합 노래에서는 십중팔구 욕이 나온다. 욕의 대규모 경작지를 마주하는 듯하다. 이 양상에서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영어 단어 ‘퍽’(fuck)이다. 많은 래퍼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줄지어 이 단어를 연호한다. 추임새 내지는 가사의 필수 어휘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최근 나온 작품들을 살펴보면 과장된 서술이 아님을 알게 된다. 6월 20일 출시된 프로듀서 마일드 비츠(Mild Beats)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세컨드핸드 스모킹>(Secondhand Smoking)에는 연주곡 세 편을 포함해 총 열네 곡이 수록돼 있다. 열 명이 넘는 객원 래퍼들이 부른 열한 편의 노래 중 아홉 편에서 그 영어 욕설이 등장한다.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가사를 기준으로 그 단어는 ‘머더퍼커’(motherfucker) 같은 활용을 포함해 총 37회 사용됐다. 힙합 레이블 인디고 뮤직(Indigo Music)이 6월 24일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 <아이엠>(IM)도 사정은 비슷하다. 여섯 명의 래퍼가 부른 열 곡 중 일곱 편에서 ‘퍽’이 쓰였으며, 총 32회 나온다. 이쪽도 문제의 단어를 찍어 내기 바쁘다.
문맥에 따라서 우리말로 ‘×나’, ‘×발’, ‘×까!’ 정도로 해석되는 저 단어는 힙합의 선천적 특징에 부합한다. 힙합은 대결과 경쟁 활동을 바탕으로 규모를 키워 왔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남들보다 더 뛰어남을 과시하는 것이 주요 강령으로 자연스레 굳어지게 된다. 욕이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한 척, 센 척하는 일차원적 방법으로 통용되다 보니 노래에도 쉽게 스며들 수 있었다. 저 단어를 쓴 우리나라 힙합 노래들도 본인이 최고라면서 불특정 래퍼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범람하는 영어 욕설은 무의식적인 사대주의의 예시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위협하려고 할 때, 못마땅한 일을 겪어서 분통을 터뜨릴 때, 놀랍거나 멋진 광경을 목격했을 때 입에 담는 비속어는 뻔하다. 대부분이 한국어 비속어를 꺼내지, 저 영어를 뱉는 이는 거의 없다. 외국 래퍼들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고, 영어를 사용하면 좀 있어 보인다는 망상을 품은 나머지 욕설마저도 영어를 쓰는 것이다.
물론 영어 욕설을 걸러 낸다고 해서 노래들의 그림이 곧바로 평화롭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영어 욕설이 증발해도 곳곳에는 한국어 욕과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 등 여전히 흉한 침전물이 남는다. 힙합의 생득적 특질에 의거해 과도한 허세, 안하무인격 태도가 노래들의 뼈와 살을 구성하는 까닭이다. 래퍼들을 비롯한 힙합 뮤지션들은 성숙한 고민과 적극적인 여과작업을 거쳐 힙합을 수용했어야 했다.
욕설과 불쾌한 표현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상을 마주하고 있자니 음반사전심의제도의 폐지가 아깝게 느껴진다. 어처구니없는 잣대로 음악인의 표현을 구속하는 폐단이 분명했지만 덕분에 상스러움은 차단됐다. 비상식적인 일이 거듭되면 비상식적인 조치가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