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생산성 저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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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일은 덜하면서도 여가는 늘어나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아직 까마득해 보인다.

디지털 기술이 경제를 압도한다. GAFA니 FANG이니 하는 새로운 조어들은 디지털 기술이 이끄는 신경제의 혁명적 상황을 대변한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등 유행처럼 떴다졌다를 반복하는 이 기술들은 따지면 디지털 기술 혁명의 부산물들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일러스트 김상민

우리가 기술 혁명에 열광하고 환호를 보내는 이유는 한 가지다. 기술이 가져다줄 삶의 개선에 대한 낙관적 기대 때문이다. 이전 시대보다 더 나은 삶을 누리고픈 욕망을 가진 인간들에게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메시아의 강림처럼 기대를 품게 만든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창업자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목소리들도 낙관적 설렘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눈앞에 마주하는 여러 현실적 지표들은 불안과 공포 안에서 부정적 사이클만 그려내고 있다.

단적으로 생산성 지표가 그렇다. 실리콘밸리를 품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생산성은 지속적인 하락세다. 특히 2004년 이후 미국 생산성 증가율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뉴스들이 매일매일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정작 미국 안에서 산업 생산성 지표는 반전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생산성의 역설이다.

불평등의 정도도 심화됐다. 기업끼리의 양극화는 물론이고 한 사회 안의 소득 불평등도 좀체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일은 덜하면서도 여가는 늘어나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아직 까마득해 보인다. 기술이 가져올 세상의 희망적인 청사진은 아직까지 안갯속이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불평등은 경제적으로 오묘하게 엮여있다. 기술이 생산성을 향상시키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면서 불평등의 정도를 완화한다. 하지만 지금의 흐름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디지털 기술 혁명이 오히려 생산성 하락을 부추기고, 소득 분배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래는 더 암울해 보이고 일자리는 점점더 줄어들기만 한다. 원인은 명쾌하다. 기술의 경제적 혜택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고 있어서다.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넷플릭스 등을 제외하면 기술적 진보를 얘기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네이버 등 몇몇을 제외하면 성장세를 구가하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 기술 진보와 그것의 경제적 혜택이 두루두루 확산되는 구조가 아니라 특정 기업에 집중되면서 기업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형국이다. 구글이나 네이버가 개발한 인공지능이 그들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견인할 순 있어도, 중소기업의 생산 프로세스에 적용돼 혁명적 비즈니스를 만들 기회는 요원해 보인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군까지 더해지면 불평등의 심화는 피할 길이 없다. 인공지능은 더 높은 수준의 경력과 능력을 갖춘 인재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지만, 중급 이하의 숙련도를 지닌 일자리를 끊임없이 대체하고 있다. 당연히 소득의 추락도 뒤따른다. 최근 우버 운전기사들이 최소 소득 보장과 진입 제한을 외치며 반발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경제적 논리가 숨어있다.

1987년, 노벨상을 수상했던 경제학자 로버트 소로우는 “컴퓨터 시대가 어디에나 도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산성 관련 통계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2018년은 어쩌면 1987년의 재현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기술 혁명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 비관할 이유는 없겠지만 유토피아를 기대하고 있다면 잠시 내려놓는 것이 좋다. 기술의 속삭임에 미혹되지 않는 상태, ‘디지털 불혹’이 요구되는 시점인 듯하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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