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만난 사랑 ‘애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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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두산인문극장 테마 ‘이타주의자’의 마지막 공연인 <애도하는 사람>은 2009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텐도 아라타 작)을 바탕으로 오오모리 스미오가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 제공

주인공 시즈토는 생면부지 낯선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일본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청년이다. 이 일을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 시즈토는 신문기사와 잡지를 통해 사람들의 부고를 접한 뒤, 그 현장을 찾아가 자기만의 의식으로 죽은 이를 애도한다. 언뜻 보면 다소 기이하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이고 따스한 행위인 것 같지만, 사실 시즈토의 애도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시즈토는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그는 고인이 왜 죽었는지 혹은 어떻게 죽었는지도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오로지 고인이 생전에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어떤 일로 감사받았는지만을 상상하며 고인을 위로할 뿐이다. 

이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건 어떻게 죽었건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기억하겠다는 시즈토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인 개개인의 인생과 죽음에 아로새겨진 하나하나의 고통과 감정의 흔적을 모두 지운 채 똑같은 무채색의 죽음으로 간주해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무대 위 시즈토의 애도하는 행위가 계속될수록 울림이 깊어지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즈음, 시즈토는 길 위에서 남편을 죽인 여인 유키요를 만나게 되고 그녀로 인해 보이지 않는 변화를 겪게 된다.

‘전국을 돌며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독특하고 기이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의 최종적인 시선은 시즈토와 유키요가 서로로 인해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우리의 인생을 나누는 수많은 경계들을 애써 구분하지 않고 그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던 두 사람이 길 위에서 만나 서로를 보듬고 삶과 사랑, 생명의 경계선 안쪽으로 함께 발을 디디는 이야기인 것이다. 서로로 인해 조금씩 변화하게 되는 시즈토와 유키요의 내적 성장은 극을 이끄는 동력이고, 김재엽 연출 역시 천천히 시간을 들여가며 두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시즈토와 유키요가 함께 한 할머니의 시체를 수습하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늘 고인이 죽은 뒤의 현장만 찾아다니며 애도했던 시즈토는 실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는 오히려 당황해 어쩔 줄을 모른다. 하지만 조용하면서도 정성스레 고인의 시체를 보듬는 유키요의 모습에 이끌려 자신도 그 행위에 함께 하게 된다. 눈앞의 죽음을 마주하고 고인을 대하는 두 사람의 시선과 움직임은 그 자체로 고요하고 경건해서 오히려 그간 시즈토가 계속해온 애도의 행위보다 훨씬 깊고 진실된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동원과 김소진 두 배우의 차분하고 단단한 연기가 어우러진 이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 길고 느리게 이어지는데도 조금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6월 12일부터 7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김주연 연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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