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업 가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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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을 꿈꾸는 IT기업에 중요한 것은 개발자와의 관련성, 개발자로부터의 관심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6월 4일 소스코드 공유 서비스인 깃헙(Github)을 약 8조원에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적잖은 금액이다. 예상 기업가치의 4배 정도를 쳐준 셈인데, 이미 구글·아마존·텐센트 등 내로라하는 기업과도 흥정 중이었다니 인수가격이 매출의 25배로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반인에게 이 낯선 기업이 왜 이렇게 구애를 받게 됐을까?

깃헙 홈페이지에 소개된 소스코드 공유 서비스 모델./깃헙홈페이지

깃헙 홈페이지에 소개된 소스코드 공유 서비스 모델./깃헙홈페이지

깃헙은 개발자들의 놀이터자 협업공간이 되어, 오픈소스 저장소의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치 누군가의 페이스북을 찾아보듯, 개발자들에게는 유능한 엔지니어의 깃헙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매출이라고 해봐야 기업에 깃헙의 비공개 저장소를 만들어주는 깃헙 엔터프라이즈 등 정도지만, 깃헙의 가치란 공개 저장소 안에 담긴 개발자들과 그들의 코드를 둘러싼 열정에 있었다. 가끔 사이트가 다운이라도 되는 날에는 그야말로 아우성이 펼쳐진다. 그만큼 기술의 세계는 깃헙에 의존적이 되어 갔다는 뜻이었다.

낙찰받은 마이크로소프트와는 최근 유난히 친했다. 특히 대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무료 코딩 에디터 비주얼 스튜디오 코드의 경우 깃헙 위에서 개발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혼자 개발하다가 깜짝 발표를 하는 것보다 미리 함께 개발하여 ‘공범’을 늘려가는 것이 더 큰 생명력을 지니게 한다는 교훈을 마이크로소프트도 깨닫게 된 듯하다.

마이크로소프트만 봐도 마인크래프트에서 링크드인, 그리고 깃헙에 이르기까지 사들인 기업의 장점에는 일관성이 있다. 모두 신뢰를 키우는 비즈니스다. 개발자에게는 비상한 후각이 있어서 개발자가 모이는 곳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자라난다. 거꾸로 기업으로서는 개발자, 즉 무언가를 만드는 이들의 신뢰를 얻고 사랑을 받는 일이야말로 내일을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가 된다.

IT기업에 있어 매출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출은 기업의 현재에는 중요하지만, 기업의 미래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플랫폼을 꿈꾸는 IT기업에 중요한 것은 개발자와의 관련성, 개발자로부터의 관심이다. 개발자가 애정만 가져준다면 그 기업은 좀처럼 쇠하지 않는다.

관심은 곧 성장이고, 무관심은 정체가 된다. 오라클처럼 아무리 매출이 괜찮다고 한들 이미 개발자의 관심이 떠나버리면 정체 끝에 노사분규만이 유일한 소식이 되기도 한다.

반면 페이스북은 초유의 대위기를 겪고 있지만 페이스북이 만들어내는 오픈소스의 활기 덕에 적어도 아직 그 조직은 ‘생기가 있구나’, ‘인재가 있구나’, ‘미래가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무서운 이유는 세계의 개발자들이 의존하는 플랫폼이자 부품 제공자가 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치밀히 의도된 전략이다.

깃헙은 개발자들의 그러한 생기와 인재와 미래가 모이는 일종의 소셜 네트워크였다. 부품 제공자의 유통망이자 플랫폼의 설계도 저장소였다. 기업에 미래를 위해 필요한 역량이란 기존의 M&A 공식에서 엿볼 수 있는 생산역량이라든가 마켓셰어가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 정보를 순환하는 힘, 사내외를 아우르며 연계하는 힘,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팀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기업들은 깨닫고 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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