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앨범 차트 꼭대기 층의 빗장이 풀렸다. 미국 대중음악 전문지 빌보드는 5월 28일 방탄소년단의 세 번째 정규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고 전했다. 한국 가수들에게는 미지의 세계로 여겨지던 그곳에 방탄소년단이 위대한 첫발을 내디뎠다.
2012년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나라 바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위에 그쳐 우리 국민들로서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었다. 차트는 다르긴 해도 방탄소년단의 1위 등극은 그때의 서운함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한국 가수가 서구, 나아가 세계 대중음악의 한복판에 마침내 우뚝 섰다.
이번 일은 한국 대중음악의 쾌거인 동시에 팝 역사의 새로운 기록이기도 하다. 클래식 크로스오버 중창 그룹 일 디보의 2006년 앨범 <앙코라> 이후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음반이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은 12년 만이다. 아시아권 앨범으로는 최초다. 정말 경이롭고 대단한 사건이다.
돌풍의 조짐은 5월 20일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확인됐다. 방탄소년단은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같은 쟁쟁한 팝 슈퍼스타들을 제치고 ‘톱 소셜 아티스트’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유수의 시상식에 이름을 올린 것은 나날이 치솟는 인기를 입증하는 사례였다.
팬들의 투표로 이뤄지는 ‘톱 소셜 아티스트’를 연달아 수상한 사실은 방탄소년단이 SNS를 즐겨 사용하는 10대, 20대 젊은 음악팬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들의 집단적·조직적인 후원으로 방탄소년단은 온라인에서 광범위하게 이름을 알려 나가기가 수월했다. 팬들의 충성심이 방탄소년단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팝 시장의 흐름을 포착한 세련된 음악도 성공 이유 중 하나다. 그룹은 초기에는 힙합에 무게를 뒀지만 2015년에 발표한 ‘아이 니드 유’(I NEED U)에서는 전자음을 들여 일렉트로니카 유행에 동참했다. 2016년에 낸 ‘피 땀 눈물’로는 하우스 음악과 레게를 혼합한 뭄바톤(moombahton) 형식의 반주로 또 한 번 트렌드에 밀착했다. 이 무렵 방탄소년단은 어두운 톤의 팝 스타일과 R&B 요소를 추가해 차트 상위권에 드는 영미 대중음악과 비슷한 모습을 갖췄다.
앨범들에 담긴 내러티브 또한 많은 이의 이목을 끈 요인이다. 그룹은 10대의 꿈과 사랑,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삶에 불안함을 느끼는 20대, 사랑과 이별 등 일정한 주제를 설정해 앨범을 제작해 왔다. 이로써 팬들은 그룹의 고민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느낌을 받게 됐다.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에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음반이 나오다니 실로 가슴 벅찬 일이다. RM, 뷔, 슈가, 정국, 제이홉, 지민, 진 일곱 멤버가 달성한 진귀한 업적은 K팝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칠 듯하다. 방탄소년단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찬란한 도약을 목격하게 됐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