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항만지역 동쪽 이스트 베이의 20세기 후반 정치사를 서술한 브라운대 교수 로버트 셀프의 책 <아메리칸 바빌론>은 미국 도시의 문제를 한 문장으로 너무나 명료하게 묘사한다. 미국 도심지역은 너무나 덜 발달되어 있고, 교외지역은 너무나 잘 발달되어 있다. 1950년대 이후 이른바 백인 탈주라고 하여 고속도로, 전철 등 대중교통시설의 확장에 따라 도시 내부에 살던 백인들은 교외지역으로 빠져 나간다. 이들이 사는 지역은 보통 학교도 좋고, 안전하다. 반대로, 유색인종 비율이 높아진 도심지역은 국가의 소외 대상이 됐다. 1960년대 인권운동 이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서 예전처럼 대놓고 주택 차별을 하는 경우는 이제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이런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우버 본사./AP연합뉴스
대중교통이 좀 더 촘촘하게 짜여지면, 이들 지역 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 중 하나는 지역 이기주의다. 여러 공공서비스가 지역 재정으로 움직이다 보니, 자기 동네에서 거둔 세금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다른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에 매우 배타적이다. 여기에 인종적 편견도 한몫을 한다. 샌프란시스코 연안지역은 1960년대 인권운동의 중심지역으로, 오늘도 진보도시 중에 진보도시로서 명성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1980년대 부동산 소유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재산세 덜내기 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의 재산세 수입은 많이 늘지 않았다. 이런 내 동네만 생각하는 환경 속에서, 대중교통 확장은 늘 지지부진한 과제다. 이곳의 전철은 1950년대에 건설을 시작했으나, 샌프란시스코 남쪽 실리콘밸리까지 확장은 이제서야 이뤄지고 있다.
우버 같은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는 건 미국이란 나라의 대중교통이 선진국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노후한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정책 영역에서 우버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은 기회를 포착한다. 대중교통이 열악하니, 그 빈 자리를 이들이 채우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하지 않으면 시장이 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우버는 자신들이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로 고용 창출을 내건다. 그러나 동시에 자율주행차를 통해 이들 고용인이 필요없는 미래를 꿈꾸는 기업이기도 하다. 나아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자들에게 우버 중심의 교통서비스가 과연 최선일까. 공공서비스가 공공서비스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효율성 때문이 아니다. 이건 국방을 민간업체에 맡기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자기의 의사에 따라 이동하는 건 소득, 장애 여부 등 다양한 조건을 떠나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도로 확장은 되지 않고, 대중교통도 별로 나아지지 않고, 대신에 인구와 차만 늘고 있으니, 주택 가격과 교통체증만 심해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국가가 못해서 시장이 개입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안 해서 시장이 개입하는 것이면, 궁극적으로 더 나은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라면, 하게끔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 해결책일 것이다. 민간영역에서 그 역할을 스타트업이 감당하냐 아니면 대기업이 감당하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혁신은 중요한 경제적 목표이지만, 혁신이 절실한 정치적 개혁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김재연 (UC 버클리 정치학과 박사과정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