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여성의 노동 ‘히든 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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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 2017년 <여성신문>의 ‘가사노동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전업주부 연봉은 3745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법원이 전업주부의 교통사고 피해보상금을 계산할 때 일용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인 ‘일용노임(10만2628원)’을 기준 삼고 있는 것을 토대로 계산한 수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주부의 일은 여전히 노동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한 공식 통계조차 없어 현재 통계청이 이를 연구 중이다.

임윤경 ‘너에게 보내는 편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사진 왼쪽).  ‘하트포드 워시’ | 코리아나 미술관 제공

임윤경 ‘너에게 보내는 편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사진 왼쪽). ‘하트포드 워시’ | 코리아나 미술관 제공

지금보다 반세기 앞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와 비판한 예술가가 있다. 미국 예술가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79)다. 그는 1969년 “이 사회는 ‘메인터넌스(유지) 직업=최저임금’ ‘가사노동=무보수’라는 등식으로 하찮은 지위를 부여한다”며 ‘메인터넌스 예술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한다. 결혼과 출산 이후 매일같이 해야 하는 집안일 때문에 예술활동을 할 수 없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한 선언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73년 유켈리스는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의 워즈워스 아테니움 뮤지엄에서 ‘하트포드 워시: 닦기/자국/메인터넌스’를 펼쳤다. 미술관 안팎을 쓸고 닦는 것이었다. 그저 ‘걸레질’ 같아 보이지만 퍼포먼스는 현대 페미니즘 미술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사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성의 노동’ 문제를 미술관이라는 공적 영역으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유켈리스를 비롯해 ‘여성의 노동’을 예술로 풀어낸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6월 16일까지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히든 워커스’(Hidden Workers)전이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현대예술가의 시각으로 ‘여성의 노동’이 사회구조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풀어낸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가사노동과 육아뿐 아니라 서비스노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들을 통해 여성들의 숨겨진 노동을 들여다본다.

1985년부터 고릴라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활동하는 작가 집단 게릴라 걸스의 포스터 10여점도 전시된다. 이들은 2011년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나-근대미술 섹션의 작가 중 여성은 4%가 안되지만, 여성 누드화는 76%나 된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통해 예술계에 만연한 여성 차별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 작가 김정은과 임윤경은 각각 손톱관리사와 아이돌보미로 활동한 자전적 경험을 예술작품으로 풀어냈다. 콜롬비아 태생의 릴리아나 앙굴로는 백인 가정에서 가사를 돌본 흑인 여성들을 담은 작품 ‘유토픽 네그로’를 선보인다.

전시는 페미니즘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며 ‘엄마, 누나, 딸, 아내의 일’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82년생 김지영> 등과 같은 책을 전시장에 비치했고, 여성을 억압하는 문구를 탁자 상판에 적어놓았다. 지우개로 자신을 억압했던 문구를 지우며 우리 사회 젠더 문제를 돌아볼 수 있다.

<이윤정 올댓아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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