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했던 20년 전 가요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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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요즘 가요계를 보면 이 명제가 떠오른다. 아이돌 그룹의 득세가 공고한 가운데 10명 이상의 멤버를 둔 대규모 그룹이 잇따라 출현하는 경향이 20년 전과 똑 닮았다. 비속어와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힙합 신의 모습 또한 그 무렵과 비슷하다. 작금의 윤곽은 1998년을 돌아보게 만든다.

핑클(위), 조성모(아래)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핑클(위), 조성모(아래)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에스이에스(S.E.S.)가 데뷔한 데 이어 1998년에는 핑클이 나와 두 걸그룹의 경쟁 구도가 연출됐다. 에스이에스는 ‘오 마이 러브’(Oh, My Love)로, 핑클은 ‘블루 레인’(Blue Rain)과 ‘루비(淚悲): 슬픈 눈물’로 많은 남성을 사로잡았다. 에이치오티(H.O.T.)와 젝스키스가 10대 소녀들의 열띤 지지를 받아 히트를 거듭하는 중에 신화의 데뷔로 아이돌 시장은 한층 팽창하게 됐다.

아이돌 그룹이 늘어나면서 각 팀의 구성원들이 증가하는 추세도 나타났다. 젝스키스를 비롯해 보이 밴드로는 신화·팬클럽 등이, 걸 그룹으로는 엘핀 러버스가 여섯 명의 멤버를 꾸렸다. 이어 8인조 오피피에이(O.P.P.A), 11인조 논스톱까지 등장했다.

솔로 가수에서는 김현정이 가장 빛났다. 1997년 출시된 그녀의 데뷔 앨범은 홍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앨범 수록곡 중 ‘그녀와의 이별’이 나이트클럽과 음반 노점상들을 중심으로 뒤늦게 퍼지기 시작했고 이내 PC통신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 김현정은 음악방송에 다시 서게 됐다.

‘그녀와의 이별’은 요즘 종종 일어나는 ‘역주행’의 시초나 다름없다. 후속곡 ‘혼자 한 사랑’도 여러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해 김현정은 단숨에 스타가 됐다. 1998년 하반기에는 조성모도 돌풍을 일으켰다. 맑고 고운 음색에 힘 있는 가창력도 매력이었으나 드라마 방식으로 제작한 데뷔곡 ‘투 헤븐’(To Heaven)의 뮤직비디오가 많은 관심을 받아 더욱 유명해졌다.

이전까지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뮤직비디오에 직접 출연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조성모의 뮤직비디오는 배우들만 내세웠다. 이를 기점으로 다른 가수들도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선보였으며, 가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도 홍보의 보편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힙합 뮤지션 조피디(조PD)도 PC 통신에 올린 ‘브레이크 프리’(Break Free)로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큰 인기를 얻었다. 제도와 매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 비속어로 도배하다시피 한 노골적인 가사가 음악팬들에게 통쾌함을 안긴 덕분이다. 사이버 공간을 들끓게 한 그는 ‘PC 통신의 서태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사이버 문화의 확산에 따른 신선한 시도들도 목격됐다. 사이버 가수 아담과 류시아가 모두 이 때 데뷔했다. 에이치오티는 멤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제작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이 생겨나는 오늘날에는 더없이 풋풋하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한동윤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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