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협,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보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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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의 남북 경제협력 전망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앞으로의 남북 경제협력을 이렇게 전망했다. 김 이사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기업지원부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인사제도비서관과 통일외교안보정책 행정관을 역임했다.

[인터뷰]“남북 경협,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보게 될 것”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 가능성이 언급된 만큼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김 이사장은 이런 흐름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종전선언 10번 하면 뭐하나. 엎으면 그만이다”라며 “되돌릴 수 없도록 하려면 물리적으로 묶어버려야 한다. 묶는 데는 경제협력이 최고다”라고 주장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1단계 수준의 개성공단이 3단계로 확대되는 것은 물론이고, 개성공단과 같은 공업지구가 곳곳에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김 이사장은 “남한의 퍼주기라는 생각은 틀렸다.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기술이 결합했을 때 효과는 어마어마할 것”라고 말했다. 4월 30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재단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방북신청을 한다고 한다. 공단 재개는 언제 논의될 것으로 보이나.

“정치·군사적인 문제를 정리하고 경협문제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치·군사적 문제에 대해 운을 뗐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을 봐야 한다. 공단 재개는 북·미 정상회담이 지나야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전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북한에 들어가는 건 우리 정부로서도 부담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라 해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가 남아있다.

“개성공단은 안보리 제재 때문에 닫은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제대로 된 근거나 절차도 없이 닫혔다. 개성공단이 닫힌 이후에 추가된 안보리 제재 5개 중 3개가 개성공단과 연결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 제재에 저촉되지 않고도 공단 재개는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 안보리 제재를 신성시하면서 절대조건인 것처럼 만들었는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 이후 안보리 제재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 본다.”

-안보리 대북제재가 풀리려면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조치를 보여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들어간다고 선언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비핵화는 시간이 걸린다. 검증 가능한 비핵화,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비핵화가 된 이후에야 제재를 풀어준다? 그렇다면 미국도 북한에 ‘되돌릴 수 없을 정도의 체제 보장’을 해줘야 한다. 서로 교환이 되어야 한다. 다들 북한의 비핵화만 이야기하는데, 비핵화의 본질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내려놓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된다.”

-개성공단이 재개되면 3단계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개성공단은 3단계 개발계획을 가지고 시작했다. 3단계는 창원공단과 창원시를 모델로 한다. 공단 800만평에 배후도시 1200만평, 이렇게 총 2000만평에 인구 50만명의 대도시를 계획했다. 애초에 10년이면 3단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14년 동안 1단계에 머물러 있다. 공단이 재개되면 당연히 2단계, 3단계로 확대될 것이다. 북한도 그걸 원하고 남한으로서도 손해볼 게 없는 사업이다. 지금부터 10년이라고 가정하면, 엄청나게 바빠질 것이다.”

-제2 개성공단, 제3 개성공단 이야기도 나오는데?

“북한은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방급 경제특구를 선정했다. 국가급 경제특구와 지방급 경제특구를 합치면 20개가 넘는다. 여기 해외자본이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 남북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경협의 고도화다. 종전선언을 하고 철책을 없앤다고 해서 신뢰가 구축되는 게 아니다.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묶어버려야 한다. 경협 중단이 남북 모두의 위기로 이어진다면 중단 못한다.”

-북한에 특구가 많다고 해도 거기서 우리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개성공단의 경우에 남한에서 원자재를 싣고 가서 완성된 물건을 다시 남한으로 가져온다. 개성에서는 만들기만 한다. 하지만 경협이 고도화되면 북한의 원자재를 쓸 수도 있고, 북한에서 팔 수도 있다. 우리는 북한에 인력과 토지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북한에도 아주 고도화된 기술이 있다. 가령 우리는 인공위성 기술이 없지만 북한은 있다. 그런 군사기술을 상품화하는 건 남한이 잘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것,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정세에 따른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개성공단이나 남북교류 기조가 정권에 따라 바뀌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 북·미 간의 적대적인 분위기는 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반도에서 힘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휴전상태여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불량국가’, ‘깡패국가’ 북한이 미국을 때릴 수 있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 불안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미국도 분단의 시대를 끝내려 할 것이다.”

-철도나 도로 연결 등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이야기가 나오는데, 퍼주기가 아닌가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해나간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SOC 개발은 진행될 것이다. 정상회담 만찬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들어갔다. 앞으로 국토부가 엄청나게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퍼주기라는 말은 틀렸다. 오히려 퍼오기다. 북한의 도로를 남한의 70% 수준까지 올리는 데 들어가는 시설비만 1052조원가량이다. 남한 1년 도로 시장이 9조원이다. 남한의 건설사들이 남북 경협을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시설비나 개발비용은 어디서 충당할 수 있나

“북한이 우리에게 달러를 줄 수는 없다. 대신 광산 서너 개의 독점적 개발권을 받으면 된다. 예전에 신의주, 평양, 개성까지 고속도로와 고속철을 같이 놓는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북측에서 자원을 받는 것으로 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가령 지금 포스코는 호주나 칠레에서 철광석을 가지고 오는데 북한에 공장을 현대화시켜주고 대신에 철을 가져오면 된다. 북한에는 어마어마한 자원이 있다.”

-북한을 믿을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해 ‘김정은 위원장이 왜 저래? 북한이 왜 저래?’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만큼 우리가 북한을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북맹’이 일반화되어 있다. 적대적 분단체제 속에서 북한은 적일 뿐이었다. 이제 평화의 시대로 진입했다. 북한을 실체적 존재로 봐야 한다. 앞으로 북한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가 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나이로 이제 서른다섯이다. 지금보다 더 과감한 행보를 보일 수도 있다. 우리의 편견으로 본다면 놀라운 것이지만, 편견을 내려놓고 본다면 굉장히 젊은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글·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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