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태는 오영심에게 일편단심이다. 배금택 원작의 만화 <영심이>다. TV 만화로도 만들어져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지금은 뮤지컬로 환생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창작 뮤지컬 <젊음의 행진>이다.
제목부터 귀에 익숙하다. 바로 KBS에서 만들어져 장수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누렸던 예능물이다. 진행자였던 송승환·최수종·하희라 등은 골목길 문방구에서 미소 띤 얼굴의 책받침으로 불티나게 팔렸고, 대학가요제 출신의 ‘대학생’ 가수들이 나와 노래와 꽁트를 선보여 사랑 받았다. ‘짝꿍들’도 빼놓을 수 없다. 가수 뒤에서 춤추고 노래했던 그들은 훗날 소방차가 됐고, 전인화나 황신혜 같은 걸출한 스타로 자랐다.
뮤지컬은 그 시절을 재연한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요들을 총망라해 이야기를 꾸몄다. 단순한 옛것의 재연만을 떠올린다면 착각이다. 노래는 추억의 K팝이지만, 요즘 감각에 맞게 새 옷을 입었다.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맘마미아!>나 퀸의 노래들로 만든 <위 윌 록 유>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의 한국적인 진화인 셈이다.
제목은 TV 프로그램에서 빌려왔지만, 내용은 추억의 만화 <영심이>를 소환했다.
극중 시대는 달라졌다. 귀여운 소녀가 무대에서는 서른세 살 콘서트 조연출로 성장했다. 왕년의 하이틴 스타인 형부와 함께 ‘8090 젊음의 행진’ 행사를 준비하던 영심은 전기 안전점검을 위해 공연장을 방문한 전문기사 왕경태를 우연히 만나고, 옛 추억으로 빠져든다.
그로부터 무대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만화 <영심이>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익숙하지만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색다른 재미를 잉태해낸 셈이다.
뮤지컬은 시종일관 관객들의 추억을 불러낸다. 학창시절 만났던 꽃미남 교생선생님, 엉뚱하게 학교 대표로 장학퀴즈에 참가해 촌극을 벌였던 사건 등이 그렇다.
남자 같은 여학생 ‘상남이’의 매력도 여전하다. 타조처럼 겅중겅중 뛰어나와 무대 가운데에서 머리를 넘길 때 빛 가루(?)가 뿌려지는 풍경은 만화 속 캐릭터 그대로다.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나와 이 별스런 재미를 완성해낸다. 배꼽잡게 만드는 익살과 해학이 돋보인다.
현진영·김완선·강수지·김건모 등의 히트곡은 그리 멀지도 그러나 너무 가깝지도 않은 감성 코드를 효과적으로 소환해낸다.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이 아카펠라로 불리는 장면에서는 폭소도 터져나온다.
친숙한 노래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 나이든 관객은 추억을 반추한다.
또 젊은 세대는 이미 대중성이나 완성도가 검증된 노래를 즐기며 무대를 경험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오빠부대’나 ‘팬클럽’으로 가득한 요즘 한국 뮤지컬들과는 꽤나 다르다. 흘러간 대중음악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다시 생산해내는 노력은 크게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이 작품이 흥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같은 문화산업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