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떠날 때 수년간 추억으로 남겨놨던 모든 데이터와 관계망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또 새로운 SNS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페이스북의 ‘데이터 스캔들’로 사용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경향DB
인간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다. 때로는 헤어지기도 하고 때론 새 친구를 사귀면서 관계 네트워크는 늘거나 줄어든다. 고무줄처럼 탄력적인 사람의 관계망은 한 사회의 역동성을 상징한다. 관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의 숙명이 지금과 같은 다양한 사회의 군상을 형성해 왔다.
인간의 관계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관계를 맺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끊기 위해 콘텐츠를 생산한다. 관계를 향한 인간의 열망은 SNS가 풍성해지는 전제조건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수많은 흔적을 남긴다. SNS에서 데이터가 생산되는 프로세스다. 관계 속에서 남겨진 데이터들은 SNS를 위해 제작되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맺기 과정에서 탄생한 사유와 행위의 부산물들인 거다.
페이스북 데이터 스캔들은 관계맺기의 그 부산물을 팔아 정치적 이득을 취하면서 발생했다. ‘프라이버시 시대는 끝났다’는 저커버그의 선언와 동시에 무한대로 열어버린 데이터 창고,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사용자들의 동의를 구하기는 했지만, 데이터가 어떤 방향으로 사용될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전세계적인 공분이 일어난 까닭이다.
페이스북을 이탈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의 페이스북 계정을 지웠다. 트위터에서는 #deletefacebook이 유행한다. 그러나 고민이다. 페이스북에 남겨둔 관계망과 관계맺기의 부산물을 옮겨둘 데가 없다. 관계의 부산물은 데이터로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관계망의 구조 안에서 다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눌 수가 없는 것이다. 데이터를 생산한 주인이 데이터를 제어하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약 10년쯤, ‘데이터 포터빌리티’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이 있다. 서로 다른 SNS, 포털 서비스들끼리 친구 데이터를 쉽게 옮겨갈 수 있도록 표준을 정해 지원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예를 들면 트위터의 친구 목록을 XFN이라는 파일 형태로 저장해 페이스북에 옮겨담아 다시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야후를 비롯해 페이스북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소셜플랫폼들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뒤 흐지부지됐다. SNS 서비스의 주도권이 바뀌면서 힘센 사업자가 슬그머니 발을 뺀 탓이다.
데이터 포터빌리티 프로젝트는 말하자면 ‘친구 목록 데이터’를 사용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완결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뒤 페이스북이 전세계 SNS 시장을 장악했다. 페이스북은 곧 법이고, 표준이 됐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주인으로서 사용자의 지위는 페이스북을 위한 데이터 노동자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페이스북 데이터 스캔들이 터져나왔다.
오는 5월 발효되는 유럽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은 데이터 노동자로 전락한 사용자의 위상을 다시금 주인의 위치로 세우는 이정표라 할 수 있다. GDPR은 데이터의 제어권을 온전하게 사용자에게 부여하고, 쉽게 이사할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했다. 마음 놓고 떠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우리도 이제 ‘떠날 권리’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SNS를 떠날 때 수년간 추억으로 남겨놨던 모든 데이터와 관계망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의탁할 새로운 SNS에서 자유롭게 이 데이터들을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떠날 권리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SNS의 친구 데이터는 나의 것이고 또 사용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규 메디아티 미디어테크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