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부리 아래의 돌
김호정 기록·우리학교·1만8000원
1977년 발생한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사건’의 피해자인 고 김추백씨는 봄이면 꽃밭에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마루에 걸터앉아 어린 딸의 머리를 땋아주며 꽃씨를 함께 거두던 자상하고 평범한 아버지였다.
김씨는 그의 딸이자 저자인 김호정씨가 아홉 살 되던 1977년 2월 낯선 사람들이 타고 온 검은차에 태워져 갑자기 집을 떠났다. 그리고 모진 고문과 협박에 못이겨 간첩임을 허위자백한 뒤 옥살이를 하다 2년여 만에 병을 얻어 다시는 딸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린 딸이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된 건 대학에 들어간 이후였다. 김호정씨는 2006년 3월 당시 진실화해위원회에 조작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청했고, 10년의 긴 싸움 끝에 2016년 대법원은 사건 피해자 11명에게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이 책은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저자가 진실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되새기고 기록한 역사적 사실이자 간첩단으로 몰려 세상을 등지거나 핍박을 받아야 했던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무죄’를 밝힌 뒤 피해자들에게 찾아온 건 한없는 허탈함이었다. 그래서 펜을 들었다.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현재의 이야기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누구나의 이야기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아픔들과 손잡는 이야기로 기억되길 저자는 희망한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