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성화의 성지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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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는 그리스 전역을 돌다 파르테논 신전 옆에 설치된 성화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후 성화는 다음날 인수식에 맞춰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 도착, 대표단에 전달된다.

민주주의의 발상지 그리스는 또한 올림픽의 성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776년부터 기원전 393년 사이 4년마다 개최되어 제293회까지 계속되었던 고대 올림픽은 물론, 1896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근대 올림픽 또한 그리스에서 제일 먼저 시작됐다.

올림픽과 관련된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화다.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되는 올림픽 성화는 늘 그리스 전역을 돈 뒤 올림픽이 열리는 국가의 대표단에 전달된다.

지나는 곳은 매번 다르다. 그런데 딱 하나, 성화가 전달되는 장소는 늘 같다. 근대 올림픽의 상징인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이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양궁 경기가 열린 장소가 바로 이 곳이기 때문이다.

10월 30~31일(한국시간) 이틀간 이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을 찾았다. 근대 올림픽의 성지답게 외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그리스 사람들도 평일임에도 상당수가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얘기를 하려면 잠시 성화 얘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앞서 말했듯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채화된 성화는 그리스 전역을 돌다 인수식을 하루 앞두고 아테네를 상징하는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바로 옆에 설치된 성화대에서 그리스기와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의 기, 그리고 오륜기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하룻밤을 보낸 성화는 다음날 인수식에 맞춰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 도착, 대표단에 전달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도 지난 31일 바로 이곳에서 인수됐다.

10월 31일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 31일 그리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성화 인수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고대에 지은 세계 유일 대리석 경기장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는 아테나를 기리기 위한 판아테나이아 대회의 경기장으로 사용됐다. 원래 경기장 좌석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기원전 329년 리쿠르고스가 경기장을 대리석으로 새로 지었으며, 서기 140년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경기장을 증축하면서 좌석을 5만개로 확장했다. 그러나 이후 전쟁과 방화로 폐허가 되며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사라져가는 이 곳을 다시 부활시킨 사람이 바로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과 더불어 근대 올림픽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에반겔리스 자파스였다. 자파스는 고대 올림픽을 부활시키기 위해 이 경기장을 발굴하고 또 정비하는 데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그리고 1870년부터 1875년까지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파스 올림픽을 후원하기까지 했다. 이후 1896년 열린 제1회 하계올림픽 때문에 다시 고쳤다. 고대의 U-자형 모델을 따라서 규격에 맞췄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리석으로만 지어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방문해보니 그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 검은색 육상 트랙을 제외한 모든 것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만 원래가 주경기장 용도로 쓰려고 만들다보니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육상 경기는 이 곳에서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딱 하나, 이 곳에서 끝이 나는 육상 경기가 있다. 바로 ‘올림픽의 꽃’ 마라톤이다.

이 이유를 설명하려면 마라톤의 기원으로 올라가야 한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이라는 곳에서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투에서 접전 끝에 아테네가 승리를 했고, 이 소식을 전하려는 전령 페이디피데스는 쉬지 않고 아테네까지 뛰어가 승전 소식을 전한 뒤 지쳐 쓰러져 죽었다. 그 때 페이디피데스가 쓰러져 죽은 곳이 바로 지금의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자리다.

마라톤 전설 깃든 그리스의 자부심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을 가보면 곳곳에서 오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보수를 하느라 군데군데 새 대리석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계단에 묻은 흙들은 그 역사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근대 올림픽의 성지답게 입구에는 역대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적혀져 있는 큰 석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석판에는 제1회 대회부터 시작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뜻하는 ‘서울 1988’이라는 글자도 적혀져 있었다.

이렇다 보니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자부심을 주는 큰 자랑거리다. 그리스 사람 테오도르 레가스(36)는 “이 곳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 큰 자긍심을 준다. 미국 같은 강대국도 이 곳에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평등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리스에서는 스포츠 선수들이 큰 업적을 달성했을 때 이 곳에서 기념행사를 갖곤 한다. 200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에서 그리스 축구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바로 여기서 기념식을 열었다.

비단 그리스 사람들만 이 곳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은 그 감회가 더하다. 일본에서 관광을 왔다는 곤도 류노스케(22)는 “일본도 2020년에 하계올림픽을 개최한다. 성화가 전달되는 곳을 직접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윤은용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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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