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에 대해 공론화위원회에서 숙의가 진행 중이다. 찬반토론은 비교적 차분하게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사안은 따로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된 원전 적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 원전의 역사는 처음부터 온갖 비리와 부패의 추문으로 얽혀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적폐가 쌓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복잡한 과학기술과 안보 상황이 맞물려 비밀주의가 횡행하다 보니 감시와 견제 자체가 어려웠으며, 원전 건설과 운영에 막대한 금액이 소요되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내부 구성원 간에 나눠먹는 카르텔 구조가 오랫동안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납품업체에 금품 향응을 받는다든지, 시험성적서를 조작하는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 시절인 1988년에 영광원전(한빛원전) 3·4호기 권력형 비리의혹으로 국감장에 증인으로 섰던 일이 있다. 2012년 고리 1호기 정전사고와 관련해서는 발전소장을 비롯해 원전 간부들이 자체 대책회의를 열어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로 모의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2012년 조석 당시 지식경제부 2차관(나중에 한수원 사장이 되었다)은 고리 1호기 수명연장을 업계에 호소하면서 원자력계의 일하는 방식을 소개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허가가 나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돈부터 집어넣지 않느냐. 한 7000억원 들어갔는데 그래놓고 허가 안 내주면 7000억원 날리니까 큰일난다”고 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중대사고를 가정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나 주민의견 수렴도 없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건설승인부터 내주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원자력계의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2013년에는 납품업체가 기준미달인 부품의 시험성적을 조작하여 제시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부품 공급 회사, 성능 검사기관, 관리·감독·승인기관 모두가 한통속으로 비리를 저질렀다.
원전의 적폐는 관리자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피폭문제와 고용조건에 따른 전문성 약화도 원전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적폐다. 2014년 현재 23기 원전에서 일하는 노동자 1만9693명의 65.6%인 1만2922명이 비정규직이거나 사내협력업체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불법파견, 고용불안, 저임금, 차별대우와 같은 일반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와 더불어, 방사능 피폭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게다가 한수원이 하청업체와 계약할 때 계약 조건으로 노조 설립 금지와 함께 노사분규 시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어서 기본적인 노동권 침해 요소도 있다.
도급을 줘서는 안 되는 방사성 액·기체 폐기물 관리까지 도급을 주고서 소송을 빙자하여 숙련공을 해고한 후, 대체된 미숙련공이 실수를 하고 이를 한수원이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방사성 기체 폐기물이 배출된 사고가 발생했다. 또 숙련공 대신 출입관리원으로 배치된 미숙련공이 한수원 절차서에 명시된 작업관리방식을 잘 몰라서 방사선 안전 관리자 없이 원전 내 격납건물 안을 출입한 사건도 있었다.
오랜 기간, 또 모든 부분에 걸쳐 켜켜이 쌓여 있는 원전 적폐는 지진보다 원전의 안전을 더 위협한다. 원전 적폐 청산 없는 공론화와 탈핵 논의는 공허할 수 있다. 국정원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을 시작했듯이 원전 적폐 청산을 곧바로 시작해야만 한다. 원전 적폐 청산이 선행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어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도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