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횟집 아들 김민재, 한국축구 ‘괴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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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신체조건, 몸싸움, 투지까지 갖췄다. 다재다능한 올라운드 수비수다. 김민재는 김호, 고 정용환, 홍명보, 이정수 등에 이어 한국축구 수비 계보를 이을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많은 축구팬들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을 보면서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김민재(21·전북 현대)는 ‘사이다’ 같은 존재였다.

한국축구의 명운이 걸린 최종예선 2경기를 앞두고 중앙수비수로 김민재가 전격 발탁됐다. 그는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의 홈 9차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그는 상대 선수 퇴장을 이끌어내면서 무실점 무승부에 기여했다.

지난 6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 원정 10차전에서도 철벽수비를 뽐내며 0-0 무승부를 이끌었다. 한국축구는 골이 터지지 않아 이기진 못했지만, 무실점 덕분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축구팬들은 김민재를 향해 “고작 A매치 2경기를 치른 수비수가 어떻게 저렇게 노련할 수 있느냐”고 놀라워했다. 이천수 JTBC 해설위원은 “21살 괴물 수비수가 등장했다. 신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경험이 적은데도 침착하고 여유가 넘친다”고 칭찬했다.

김민재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3만여명의 우즈베키스탄 홈팬을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는 ‘경상도 사나이’답게 무심한 듯 툭툭 내뱉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한국축구대표팀 김민재가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공을 패스하고 있다./이석우 기자

한국축구대표팀 김민재가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이란전에서 공을 패스하고 있다./이석우 기자

통영 횟집 아들 김민재, 한국축구 ‘괴물’이 되다

신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21살의 여유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이란과의 경기에 파격적으로 김민재를 선발로 내세웠다. 신 감독은 “오래전부터 김민재를 지켜봤다. 처음부터 김민재를 이란전 선발로 낙점했고, 그의 파트너로 김영권(28·광저우)을 골랐다”며 “경기 전 영권이에게 민재를 컨트롤해달라고 당부했는데, 나중엔 민재가 영권이를 컨트롤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김민재는 “경기 당일 선발출전을 알았다. 프로 데뷔전은 떨렸는데 대표팀 데뷔전은 떨리지 않았다”며 “소속팀에서 이동국(38), 김신욱(29) 등 형들과 훈련해서인지 이란 선수들이 버겁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말했다.

이란전 후반 7분, 김민재는 공중볼을 다투다 이란 에자톨라히에게 머리를 밟혔다. 상대는 퇴장당했다. 알고 보니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상대를 툭 치거나 약 올리며 ‘깐죽’대다 보니 퇴장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더 뛰고 싶었지만 어지러웠다. 역적이 될 수도 있어 교체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김민재가 닮고 싶은 롤모델은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31·스페인)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들이 좀 거칠고, FC바르셀로나 수비는 좀 부드럽다. 나는 개인적으로 때려박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민재는 어릴 적부터 지고는 못 살았다. 수원공고 2학년 때 라이벌 용호고에 0-4로 뒤지자 거친 태클로 퇴장당한 적도 있다. 김민재의 에이전트인 조병준 풋볼에이드 이사는 “주위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잘했다고 해도 민재는 만족하지 않는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매경기가 끝나면 작은 실수도 복기한다”고 전했다.

김민재는 온라인 게임도 한 번 하면 끝을 본다. ‘리그오브레전드(LOL)’ 고수다. 김민재는 “오래 앉아 있는 게 다리근육에 안 좋다고 해서 최근 게임을 끊었다”고 말했다.

김민재의 별명은 ‘우량아’, ‘괴물’이다. 유도선수 출신 아버지 김태균씨와 육상선수 출신 어머니 이유선씨로부터 건장한 체격(키 1m89, 몸무게 88kg)을 물려받았다. 웬만해선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아 붙은 별명이다. “여자들이 ‘괴물’이라는 별명을 싫어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민재는 “지금은 여자는 안 만나도 된다. 축구에만 집중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답했다.

그는 올해 ‘신인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K리그 명문 전북에 입단해 당당히 주전을 꿰찼다. 올 시즌 28경기(2골)에 출전해 선두 질주를 이끌고 있는 김민재는 영플레이어상 1순위다. 김민재가 수상하면 포항 문민귀 이후 13년 만에 수비수 출신 신인왕이 탄생한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김민재는 수비수가 갖춰야 할 여러 덕목들을 고르게 갖췄다. 현대축구에서 수비수는 빠른 발과 발기술, 판단력을 갖춰야 상대를 막고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빌드업도 가능하다. 김민재는 신체조건, 몸싸움, 투지까지 갖췄다. 능력치를 육각형으로 그리면 모든 부분에서 수치가 좋다. 다재다능한 올라운드 수비수”라고 말했다. 김민재는 김호, 고 정용환, 홍명보, 이정수 등에 이어 한국축구 수비 계보를 이을 선수로 주목받고 있다.

운동선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체격

김민재는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 출신이다. 통영은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김호 용인축구센터 총감독, 김종부 경남 감독, 김도훈 울산 감독 등을 배출한 ‘축구 도시’다. 김호곤 위원장은 김민재에 대해 “대성할 ‘통영 촌놈’이다”라고 칭찬했다.

김민재의 부모는 통영에서 테이블 6개짜리 작은 횟집을 한다. 학창시절 김민재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선배들 축구화를 물려 신었다. 2012년 그가 17세 이하(U-17) 대표팀에 뽑혔을 때다. 동료들은 소집일 전날 서울에 올라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대표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는 당일 새벽에 횟감을 운반하는 아버지 김태균씨(47)의 물차를 타고 7시간 고속도로를 달려 소집에 응했다. 어머니 이유선씨(47)는 “남편이 동해에 가는 길에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아들을 내려줬다. 민재가 대표팀에 들어가기 전에 녹초가 돼 마음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연세대에 진학한 김민재는 2년을 다닌 뒤 중퇴했다. 이어 2016년 내셔널리그(3부리그)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에 입단했다. 하루 빨리 성공해서 부모를 호강시키겠다는 마음에서다. 사정이 열악한 내셔널리그의 선수생활도 쉽지 않았다. 김민재는 “한 번은 숙소에서 공용으로 쓰던 세탁기가 고장났다. 막내인 제가 형들의 빨래를 모아 빨래방에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민재는 U-16, U-20 등 연령별 대표를 거쳤지만 정작 올림픽 등 국제대회 본선무대를 밟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김민재는 “첫 성인대표팀 발탁이라서 월드컵 진출이 안 와닿을 줄 알았다. 동갑내기 공격수 황희찬(잘츠부르크)이 그라운드에 고꾸라져 울고 있길래 실감이 났다”며 “난 불과 얼마 전까지 월드컵은 생각도 못했다. 이젠 기회가 오면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통영 시내에는 ‘통영바다막썰어횟집 김태균·이유선의 차남 김민재 축구국가대표 선발’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김민재의 부모님은 아들의 경기날이면 횟집 문을 닫고 달려간다. 이유선씨는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란전에 아들이 당당하게 입장하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유선씨는 “민재가 상대 선수에게 머리를 밟히는 모습을 보고 경기장에 뛰어들어가고 싶을 만큼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다.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에 가장처럼 의젓하게 행동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프로 1년차 김민재의 연봉은 3600만원. 그의 꿈은 부모님에게 통영에 근사한 집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에게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서는 당당한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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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