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도시의 잔인한 풍경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북리뷰]거대도시의 잔인한 풍경

LA 레퀴엠
로버트 크레이스 저·윤철희 역 오픈하우스·1만5000원

LA의 사립탐정 엘비스 콜입니다라고 말하면 누구나 물어볼 것이다. 본명인가요? 게다가 늘 하와이안 셔츠 차림이라면 더더욱 믿음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엘비스 콜은 화려해 보이지만 어두운 내면을 가진, LA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탐정이다. 언제나 농담에 우스꽝스러운 차림이지만 유능한 탐정이고 사려 깊다. 그리고 아침마다 태극권과 명상으로 자신을 다스린다. 파트너인 조 파이크는 동료 살해범으로 불리는 전직 경찰이고, 콜이 열 마디를 하면 예, 아니오로 한 번 정도 답하는 과묵한 탐정이다. 전혀 성격이 달라 보이지만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잘 알지는 못해도 받아들이고, 함께 간다. 그게 동료이고 친구다.

인기 경찰드라마 <힐 스트리트 블루스>의 각본을 썼던 로버트 크레이스는 어두우면서도 활기찬 범죄소설을 쓰는 작가다. 경쾌하게 읽히지만 로버트 크레이스의 세계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세계를 정통 하드보일드 풍으로 간략하게 정리했다고나 할까. ‘엘비스 콜’ 시리즈의 대표작인 은 주인공인 엘비스 콜 못지않게 조 파이크를 부각시킨 소설이다. 조 파이크의 과거와 현재가 연쇄살인에 얽히면서 이야기의 메인으로 등장한다.

조 파이크가 경찰 초년병일 때 사귀었던 카렌 가르시아가 살해당한다. 지역 유지인 카렌 아버지의 부탁으로 사건을 맡게 된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 그들은 희생자가 카렌만이 아니라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카렌의 시체를 발견한 더쉬가 용의자로 지목된다. 하지만 더쉬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조 파이크가 체포된다. 콜은 조 파이크를 구해내기 위해,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파이크의 과거를 추적한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함께 어울리면서 펼쳐지는 영화를 보디 무비라고 부른다.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들고, 슬픔도 기쁨도 함께 하면서 동지애가 쌓이는 것이다. 남녀라면 사랑이 싹트고. 엘비스 콜 시리즈는 주인공인 콜이 전혀 다른 성격의 파이크와 어울리면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더한다. 유쾌하고 활기찬 탐정을 원한다면 엘비스 콜, 우직하고 강력한 탐정을 원한다면 조 파이크. 조연인 파이크에 대한 인기는 날로 높아져, 국내에도 출간된 <워치맨>을 시작으로 ‘조 파이크 시리즈’가 따로 이어지고 있다.

은 LA라는 도시의 어지러운 면모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나는 LA를 사랑한다. LA는 순전히 그 거대한 규모로 우리를 보호하는, 지옥까지 무분별하게 펼쳐진 위대한 도시다. …할리우드 입간판 아래에서 겁탈당한 소녀는 당신의 누이가 아니다. 피로 물든 수영장에 떠 있는 소년은 당신의 아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안전하다. 무슨 범죄가 벌어지더라도 그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벌어질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당신의 문을 걸어나갈 때, 그건 더 이상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그건 당신의 문제다.” LA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지옥을 로버트 크레이스는 그려낸다. 잔인하고 비정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낙원은커녕 지옥으로 떨어지기 일보직전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북리뷰바로가기

이미지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오늘을 생각한다
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