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의 길과 나영석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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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태호의 길과 나영석의 길

김태호와 나영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예능 PD다. MBC의 <무한도전>과 KBS의 <1박2일>로 예능계를 양분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최정상 예능 PD로서의 지위를 이어오고 있으니 그 세월이 참으로 대단하다. 두 사람은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무한도전> 안에서 매회 새로운 기획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 김태호 PD와 <1박2일> 안에서 여행과 잠자리 복불복 게임이란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면서도 매회 차별화된 웃음을 뽑아내는 나영석 PD의 연출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여간해서는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출연진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며 돌발상황조차 감수하는 김태호 PD와 수시로 카메라 앵글 속으로 들어와 출연진들과 소통하고 조율하는 나영석 PD의 캐릭터도 대조적이다. 김태호 PD는 여전히 <무한도전>에 남아있고, 나영석 PD는 진작에 <1박2일>을 떠났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요즘 두 사람의 엇갈린 상황은 또 다른 비교의 대상이 되고 있다. KBS를 떠나 tvN으로 자리를 옮긴 나영석 PD는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알쓸신잡>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새롭게 내놓는 프로그램마다 속속 히트작 반열에 오르니 이만하면 가히 예능계 미다스의 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KBS 시절부터 꼭 해보고 싶었다던 시즌제 프로그램을 새로 옮긴 직장에서 마음껏 할 수 있게 되면서 짧은 호흡으로 적절히 쉬며 새로운 기획을 구상할 여유를 확보한 것이 그의 성공 요인이라 하겠다.

반면 김태호 PD는 MBC 파업에 동참하느라 제작 현장을 잠시 떠나 있는 중이다.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오기를 좀처럼 꺼려하던 그가 이번엔 자진해 카메라 앞에 나서 “김장겸 사장은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고 일갈했다. 그는 “웃기는 건 예능 PD들의 몫이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토요일 저녁 시간이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해오던 <무한도전>은 당분간 결방이 불가피해졌다. 김태호 PD의 증언에 따르면 그동안 MBC 경영진은 터무니없이 제작비를 삭감하면서도 귀빈 행사에는 몇억 원씩 쏟아부었고.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노래 한 곡과 자막 한 줄까지 검열하는 등 폭거를 일삼았다고 한다. 결코 즐거울 수 없는 참담한 여건 속에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줄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고역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나영석 PD는 김태호 PD의 주특기였던 다양한 변주를 통해 날개를 활짝 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고, 김태호 PD는 나영석 PD가 평소 즐기던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와 프로그램 제작 대신 파업 성명서 낭독을 했다. 대한민국 대표 예능 PD 김태호의 길과 나영석의 길은 이렇게 묘하게 엇갈렸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엇갈린 길은 그들의 역량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방송사 경영진의 역량과 자질의 차이로부터 비롯되었다. 시청자들은 나영석 PD가 또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변주를 보여줄지 여전히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은 김태호 PD가 카메라 앵글 뒤에서 여전히 수줍게 웃으면서도 꿋꿋이 <무한도전>을 이끌어가는 한결같은 모습을 기대한다. 그러니 역량도 자질도 없는 김장겸은 이제 그만 웃기고 MBC를 떠나라!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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