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광화문 뒷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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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다시 광화문 뒷골목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옆길로 빠져 나가면 변호사회관이 있고 그 뒷골목에 간재미 무침을 잘하는 막걸리집이 있다. 오랜만에 우리는 거기서 다시 만났다. 마침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성큼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겨울 주말마다 촛불집회가 열려 광화문광장이 붉게 타오르면서, 청와대 앞까지 진격을 마치고 되돌아와 마지막으로 자주 찾았던 길거리 막걸리집을 오랜만에 들른 것이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끓어오르던 분위기 얘기는 이제 안줏거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지도 100일이 훌쩍 지났으니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촛불혁명 완수의 첫 번째 과제는 적폐청산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적폐는 무엇인지, 각 분야의 적폐가 어느 정도 청산되고 있는지, 이런 얘기를 하는데 빈 술병이 늘어날수록 목소리는 커져가고 대화 내용은 뜨거워지고 있었다.

우리들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랬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좋은 평가가 국민의 75%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너무 여론을 의식한 정책으로 근본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염려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이든 권력이든 가진 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벌이는 집단이기주의와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차별과 갑질 등 비인간적 행태다.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를 양극화시켜 불평등사회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폭력인데, 결국은 폭력적 불평등사회가 현재 우리 사회의 그늘진 모습이고, 우리가 힘을 모아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해결은 법이나 제도, 정부시책, 사법절차에 따라 완화되기도 하겠지만, 그 집단이나 당사자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우리 생각이었다. 특히 기득권의 횡포가 심한 검찰·법원·언론·교육·종교 등의 개혁은 그 집단과 개인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최근 언론 개혁을 위한 당사자들의 몸부림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러면서 이제는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해서도 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나 자신부터 이기적 삶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아침에 만난 한 분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도 그분을 만난 곳은 산책길 약수터 부근이었고, 그분 손에는 어김없이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내 나이에 다섯쯤은 더돼 보이는 덩치가 작아 조금 왜소해 보였지만, 눌러 쓴 모자에 허름한 점퍼가 어색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약수터는 주변이 늘 지저분하기 일쑤다. 여기는 늘 빗질 자국이 곱게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 참 묘하다 했는데, 누구에게 들으니 바로 그분이 거의 매일 한 번씩 정성스럽게 쓸어서 그리된 것이라 한다. 남이 볼세라 주로 아침 일찍 나와서 쓸곤 하는데, 누구는 모두 알 만한 큰 회사 사장 출신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어느 고등학교 은퇴교장이라고도 한다. 누가 조심스레 물으면 빙그레 웃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청소하는데 그딴 게 왜 문제냐고 하면서, 매일매일 청소의 묘미를 알게 되고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 기분도 좋고, 건강도 좋아져 무척 기분이 좋다며, 조금은 수줍은 듯 돌아서는 그 뒷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크게 보였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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