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범자들>의 감독인 최승호 PD는 안광한 사장이 직접 해고한 당사자다. 최승호 PD가 안 전 사장이 MBC가 제공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걸 기다려 질문을 던지는데, 안 전 사장은 카메라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영화 <공범자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 중 한 사람은 올해 2월까지 MBC 사장을 지낸 안광한씨다. 김장겸 현 사장이 MBC의 보도부문을 일베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전락시켰다면, 안광한 전 사장은 MBC의 제작부문을 초토화시켰다. 단역급에 불과했던 정윤회씨의 아들을 MBC 드라마 7편에 ‘조연급으로 대우하라’며 강제적인 캐스팅을 지시했다는 혐의는 그의 ‘엽기적인’ 경영행위의 일각에 불과하다. 안광한 사장은 공영방송 MBC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사교양’ 장르를 완전히 해체시켰고, 프로그램을 말살했을 뿐 아니라 사유화했다. 안광한 사장은 영화 <공범자들>에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이 두려웠는지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PD들을 사지로 내몰고 사장이 되다
안광한씨는 2010년 “청와대로부터 조인트를 까여가며 좌파를 청소했다”는 김재철 사장의 부임과 함께 편성본부장으로 발탁되었고, 이후 부사장을 역임했다. MBC의 가장 큰 자회사인 MBC 플러스 사장을 거쳐, 2014년에 MBC 사장이 되었다. 그는 출세를 거듭할 때 어김없이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과 연출자들을 짓밟았다.
안광한이라는 이름은 2010년 10월, 지금의 MBC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PD수첩 불방사태’와 함께 부각되었다.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을 다루었던 이 프로그램을 방영 당일 불방시킨 장본인은 김재철 사장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방송 강령 위반을 주도한 것은 바로 당시 안광한 편성본부장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정확히 4개월 후 그는 부사장으로 영전했다.
MBC 방송노동자들이 2012년 170일 파업을 했을 때 그는 부사장이자 인사위원장이었는데, 그때부터 약 5년간 수백 명의 방송인을 해고하고 징계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가 직접 피를 묻힌 해고와 징계는 끔찍한 것이었다. 불법, 위법, 경영권 남용이라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거의 전부 무효가 되었는데, 그의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황당한 것들도 있었다.
김재철 사장이 갑자기 MBC를 떠났을 때 <최양락의 재밌는 라디오>는 이 상황을 풍자했는데, 안광한 부사장은 이 ‘풍자’를 이유로 입사 30년차 안혜란 PD에게 정직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2015년에는 경인지사로 부당전보한 권성민 PD가 수원으로 출퇴근하는 시간을 이용해 예능 PD의 ‘애환’을 웹툰으로 표현했는데, 그 ‘애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해고’시켰다. 그는 애환과 풍자도 검열했다. 대법원으로부터 무효 판정을 받았지만 그는 사장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3년의 임기를 꽉 채웠다. 징계와 검열 행위들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사장이 된 후 그는 MBC에서 ‘교양’이라는 이름을 지웠다. 그는 이미 50여명의 현역 시사교양 PD들 가운데 3명(최승호, 이근행, 강지웅)을 해고하는 데 앞장섰고, 20명 이상을 부당징계·부당전보 처리했다. 겨우 법원의 명령으로 PD들이 돌아오고, 조직을 추스르고 있던 2014년 10월 안광한 사장은 공영방송 MBC에서 교양제작국을 해체하고 <불만제로> 등 교양 프로그램을 폐지시켰다. 당시 <불만제로>는 MBC 자체평가로도 가장 유익한 프로그램 2위였다. 그 해에 방송통신위원회의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과 한국PD연합회의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한 직후였다. 그리고 ‘블랙리스트’가 발동되었다. 상을 받았던 PD들을 비롯해 15명의 시사교양PD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경인지사, 사업국, 편성국 MD, 예능국 등지로 흩어졌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는 교양국을 해체한다는 데 대해 여론이 악화되었지만 그는 ‘사냥행위’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에 의해 MBC 시사교양 장르의 숨통은 완벽하게 끊어졌다.
안광한 사장은 마치 ‘교양국 국장’처럼 행동했다.
안광한 사장이 직접 지시해서 만든 것으로 알려진 토론 프로그램 <이슈를 말한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은 KBS에서 공정성 시비로 PD들의 반발을 사고, 논란 끝에 토론 프로그램에서 물러난 왕상한씨가 맡았다. 왕상한 MC에게 배정된 개런티는 자그마치 400만원. 1시간 30분 정도의 녹화시간을 고려한다면 시간당 개런티 수준은 유재석, 신동엽급이었다.
<이슈를 말한다>는 토론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지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2015년 정호준 국회의원실 분석에 의하면 2015년 1월부터 9월까지 출연자 가운데 정부 및 여당 인사는 52.9%였고, 야당 인사는 11.7%에 불과했다고 한다. 노동문제에 있어서 그 편협함은 극에 달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같은 경우 ‘노동자’라는 이해당사자는 토론에서 배제되었고, 노동부 장관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출연해 일방적으로 ‘‘대기업 노조’를 폄하하고 정부 정책을 홍보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고용노동부는 안광한 사장이 저지른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철저하게 외면했다.
다큐멘터리 역시 안광한 사장이 직접 관리했다. 그는 이탈리아·프랑스·이란과의 수교를 기념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지시를 내렸는데, 어김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그 나라를 방문했고, 방문날짜에 맞추어 프로그램은 MBC의 전파를 탔다. 지상파 방송 3사 가운데에서도 MBC가 유일했다. 안광한 사장 영역 안에서 다큐멘터리가 기록할 수 있는 사실은 명백히 제한적이었다. 세월호, 노무현, 혹시 진보적인 그 무엇이 연상만 돼도 아이템들은 완벽하게 검열되었고, 간혹 그 검열이 뚫리면 질책이 쏟아졌다. 안광한의 다큐멘터리들은 대중의 기억을 왜곡하는 데 기여했는데, 그래서 그 다큐들을 다큐라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사장이 다큐멘터리까지 직접 관리
영화 <공범자들>의 감독인 최승호 PD는 안광한 사장이 직접 해고한 당사자다. 최승호 PD가 안 전 사장이 MBC가 제공한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걸 기다려 질문을 던지는데, 안 전 사장은 카메라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을 친다. 한때 동료였던 PD의 질문을 피해 건물 여기저기를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은 일반 관객에게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일 것이지만, 한때 그를 편성본부장, 부사장, 사장으로 불렀던 MBC 사람들에게는 눈 뜨고 보지 못할 참극(慘劇)이었다. 영화는 이런 수준의 인간에 의해 MBC가 지배당했다는 사실만으로 MBC가 실패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사실 MBC만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안광한 전 사장은 2014년 8월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장한 고대 언론인상’을 받았다. 한국의 지식인을 대표한다는 언론과 학계가 지난 9년간 완벽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안광한의 성공담은 보여주었다. 횡령, 무고, 업무방해, 부당노동행위 등등의 혐의로 고발돼 있는 그가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김재영 PD(PD수첩 등 연출, 현재 송출실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