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전문가 대담 “의사조차 환자에게 가습기 쓰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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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가 이렇게 되기까지 책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는 거 같습니다. 국가도 그렇고, 기업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문제를 감시해야 할 공중보건전문의와 전문가도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오는 8월 31일이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이 공론화된 지 7년이 된다. <주간경향>은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지난 1년간 ‘엄마 숨이 안 쉬어져’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삶과 정부당국의 피해구제 상황을 감시하는 연재를 해 왔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살충제 계란’이라는 사태가 터지면서 여전히 독성화학물질에 대한 체계적 감시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주간경향>은 연재 종료를 앞두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규명에 앞장선 전문가들의 대담을 마련했다. 16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안종주 박사,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양현종 순천향대 소아청소년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살균제 판매중단 후 천식 환자 줄어”

-안종주(<빼앗긴 숨> 저자, 환경보건학 박사)지금 이 시각 가습기살균제참사넷은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의 노력 끝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는 지난 10일 회의에서 천식을 피해질환으로 인정했지만, 환경부는 아직 천식환자들을 피해구제 대상으로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의학적 근거’가 약해 기업을 상대로 한 피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먼저 천식이 어떻게 피해범위에 들어가도록 확정됐는지요?

-양현종(순천향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 천식이라는 질환 자체가 딱히 원인이 규명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해외에서 화학물질이 천식을 악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전기매트나 뿌리는 화학살충제 등 모든 화학물질이 기도에 작용해 천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우선 피해자들이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조사해보니 천식환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연도별로 천식 발병률과 유병률을 조사해보니 2011년 이후 천식환자와 천식으로 응급실에 입원하는 수가 국가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판매 중단조치 이후 약 20% 정도 줄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가 천식의 발생에 관여하지 않았을까 추론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추가연구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결과만으로도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양현종 순천향대 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기획위원 / 우철훈 선임기자

16일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양현종 순천향대 병원 소아청소년과 부교수,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환경보건학과 교수,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안종주 환경보건시민센터 기획위원 / 우철훈 선임기자

-안종주 가습기 살균제 환자 중에는 천식 말고도 호흡기질환 등 다른 장기에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피해 인정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임종한(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4차 접수자들을 포함해 5000명 넘는 분들이 환경부에 피해신고를 접수했습니다. 병원 기록을 통해 그분들이 어떤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는지, 또 일반 환자 집단과 비교해 봐서 어떠한 질환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면 가습기 살균제 노출부위에 따라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는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염이나 결막염·피부질환이 발견되고, 기존에 비염이 있는 환자들은 축농증이 추가로 생기기도 하며, 가습기 살균제에 기도가 노출된 경우 천식과 간질성 폐렴을 호소하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이런 다양한 질환 간에 독성학적·역학적 증거가 있는지 찾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안종주 가습기 살균제는 아직까지 시민들에게 ‘폐 손상 물질’이라고 각인돼 있습니다. 여기 천식이 추가됐고, 조금씩 인식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임 교수님께서는 ‘가습기 살균제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이를 통해 피해 인정범위를 넓히자고 주장하셨지요?

“비염, 결막염 등 여러 질환 함께 나타나”

-임종한 아직은 가설입니다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보인 비염·결막염·후두염·피부염 등의 증상을 보면 해부학적으로 공통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살균제 성분이 세포점막 안에 들어와서 독성학적 변화를 일으키거나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또 면역을 저하시키기도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점막이 노출되면 세포 손상을 가져온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되지 않은 인구집단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즉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한 가지 질환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3~5가지 질환이 한꺼번에 나타났다고 호소합니다. 증후군으로서 특성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겠지요.

-안종주 피해 인정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천식의 경우 ‘예’와 ‘아니오’의 두 가지 단계로 구분합니다. 기존 중증특이폐손상은 환자들을 1~4단계로 구분했지요. 질환과 가습기 살균제의 연관성에 대해 1단계 ‘확실함’, 2단계 ‘높음’, 3단계 ‘낮음’, 4단계 ‘관련 없음’으로요. 피해 인정과 관련해 환자들을 4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은 적절했을까요?

-박동욱(한국방송통신대학교 환경보건학과 교수) 질병 종류에 따라 다를 것으로 봅니다. 구분된 그룹 간에는 임상적 차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식이나 비염 등과 같이 원인이 다양한 질병은 피해 연관에 따라 여러 범주 또는 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 ‘비특이적 질병’의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에서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용되었던 가습기 살균제 제품 수는 물론 제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 성분, 농도, 물성 등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피해질병을 일으킨 원인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지 않는 것이지요. 가습기 살균제가 제품별로 다르고 이들의 독성도 다릅니다. 그런데 지금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 제품 자체로 뭉뚱그려 얘기하고 있습니다. 보상과 지원 대상은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로 하더라도 제품별·성분별로 물리화학적 특성을 조사하고 정리하는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PHMG만 하더라도 알려진 것처럼 분자량이 거대한(1000 이상) 고분자물질이 아닙니다. 가습기 살균제 제품별로 살균제 화학물질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조사하고 이에 근거한 건강영향 파악이 향후 피해질환의 범위를 결정하고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종주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손 놓고 있을 때 한국환경보건학회 소속 교수들이 직접 개인비용까지 내가면서 현장에 가서 직접 피해현장 조사를 하셨지요. 이 사건을 5~6년씩 맡으면서 느낀 점들은 무엇입니까? 우리 사회가 개선할 점들은 뭐가 있을까요?

-박동욱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이렇게 참사가 되기까지 책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는 거 같습니다. 이런 제품을 만든 기업은 두 말할 것도 없고, 이를 허가하고 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도 그렇고, 이런 문제를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감시하지 못한 환경·보건전문가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가습기는 그 자체도 폐질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1990년대 이전부터 외국에서는 많이 보고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병원에서조차 의사가 환자에게 가습기 사용을 권장했습니다. 현대는 위험사회입니다. 새로운 과학과 기술이 위험을 만들어냅니다. 인공화학물질의 건강영향은 사전에 모두 알아낼 수 없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막기 위한 국가, 전문가들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고는 일어나더라도 그 사고가 확산되지 않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요.

2012년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불화수소산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화학물질 사고는 노동현장을 포함해 끊임없이 발생해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2012년 환경운동연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불화수소산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화학물질 사고는 노동현장을 포함해 끊임없이 발생해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사고냐 국가재난이냐, 성격 규정 필요”

-양현종 통일된 구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국가의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구요, 저 역시 이 일에 제 분야(소아호흡기질환)의 전문가로서 참여했는데 그러다보니 시야가 좁습니다. 그러나 수십 명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다보니 수년에 걸쳐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과정들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동욱 사고는 항상 일어납니다. 예방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뒤의 대응체계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고를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는 국가체계가 없습니다. 제품을 사용하다 사고가 나거나 건강영향이 생겨도 신고할 곳이 없습니다. 모두 개인이 감당해야 합니다. 맥도날드 햄버거병도 대표적입니다. 국가 제도의 결함으로 생긴 위험을 개인이 감당하는 구조입니다. 저는 물질중독센터의 설립을 주장합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화학물질중독센터’가 아닙니다. 경제활동과 소비활동에서 경험한 사고, 건강영향, 불편함을 누구나 신고할 수 있는 국가조직을 말합니다. 무엇보다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물질중독센터의 설립만으로 기업으로 하여금 안전한 제품을 생산하게 하는 억지력이 있어 상당한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미국 등 OECD 모든 국가들은 물질중독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임종한 현재 보건환경당국에 독성물질이 물질별로 등록돼 있지만 일반 시민들은 혼합물을 통해 여러 가지 독성 성분에 동시 노출됩니다. 그럴 때 피해에 대한 불확실성이 큽니다. 현재는 이런 것들을 조사할 단위가 없습니다. 중독관리센터를 세워 관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양현종 그런 의미에서 피해구제 기관은 확장해야 하는데 환경부 소관으로 좁히려는 경향은 우려스럽습니다. 산업재해는 고용노동부, 일반 질환은 보건복지부, 환경질환은 환경부 이런 식으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박동욱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물질 중독에 대한 공중보건망을 튼튼히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질병에 걸리면 다른 조직이나 몸 전체에 이상이 없는지 검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국민들이 노동과 소비활동에서 수많은 사고, 건강영향들을 입을 수 있지만 이를 포괄적으로 감시하고 종합하는 체계가 없습니다. 환경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는 각자 해당되는 질병과 사고의 원인들만 봅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 하나, PHMG 등 화학물질, 환경성 질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기회에 노동과 소비활동에서 생기는 사고와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감시할 수 있는 국가 공중보건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막을 수 있는 사고와 질병은 막고 참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국가 공중보건망을 말합니다.

-안종주 이번 참사 성격을 규정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냐 국가적 재난이냐. 국가 재난이라면 인적·물적 자원들을 총투입해서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할 텐데, 벌써 6년이 흘렀지만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합니다. 전문가분들도 앞으로도 계속 힘을 보태주시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정리·사진 박은하 기자·우철훈 선임기자 eunha999@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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