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사랑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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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폭력, 사랑의 이름으로

중학교 때 음악시간은 끔찍한 공포의 시간이었다. 실기에서 음정 하나 삐끗하거나, 질문에 즉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가는 아비규환의 매타작이 작렬했다. 류 아무개 음악선생은 깡마른 데다 생김새마저도 흉악하기 그지없었는데, 몽둥이질은 기본에 주먹과 발길질이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이태리 가곡 “카로 미오 밴 크레디욜 맨 센자디테…”를, 헨델의 “옴부라 마이 푸 디 훼게타빌레…”를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곤 한다. 교실 가득 울려 퍼지는 그 아름다운 음률의 고전음악이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굉음으로 들릴 만치 압착된 공포와 버무려져 내 10대의 기억창고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이 진저리칠 만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다름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영화 ‘4등’이었다.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데 배경음악이 예의 그 “카로 미오 밴…”이 아닌가. 영화는 내게 묻는다. 류 아무개 음악선생은 나에게 고마운 분이었을까. 그 매질이 아니었으면 이 부박한 삶에 감히 이태리 가곡 같은 고상한 교양을 하나라도 갖출 수 있었을까. 영화 속의 광수가 준호에게 나긋나긋 타이르듯, 그 음악선생은 지금도 내 귓속에다 속삭인다. “니가 미워서 때리는 거 아니거든, 니 잘 되라고 때리는 거거든.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 영화 속의 인물들은 말한다. “맞아야 1등 하고, 1등 해야 존엄해진다.” 말하자면, 존엄해지려면 먼저 존엄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비탄의 세상 때문인지 요즘 주책없이 눈물이 많아졌는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질질 짰다. 슬퍼서, 죄스러워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영상이 아름다워서 또 눈물이 났다. 나도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그 음악선생이었고, 광수였고, 준호였을 것이다. 내가 맞은 만큼 누군가를 때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니가 미워서 때리는 거 아니거든, 니 잘 되라고 때리는 거거든” 하며 자위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껏 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경 약할 때 피해자였고, 힘 있을 때 가해자였을 것이다. 영화 4등이 던진 문제적 상황은 폭력의 세습, 또는 폭력의 도미노를 고발하는 따위의 고루하고 상투적인 것이 아니다. 폭력이 사랑의 이름으로 우리 일상 속에서 아름답게 포장되어 유통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남편은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죽도록 구타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부모는 사랑의 매를, 교사는 훈육의 매를 든다. 장병을 아들처럼 사랑하기에 노예처럼 부리고, 사랑스런 딸로 여겨 성희롱을 일삼는다. 노동자가 이기심을 버려야 사랑의 공동체가 가능해지고, 기독교의 사랑은 혐오로 더욱 빛을 발한다.

가해자의 ‘갑질’이 사랑으로 내면화되는 반면, 피해자가 당한 경멸과 모욕은 실체 이상으로 증폭된 채 공포로 내면화된다. 이제 사람답게 살려면 어쨌든 먼저 ‘갑’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내 자식만큼은 남의 머리통을 짓밟고서라도 올라서야만 한다. 가해에 대항하는 피해자들의 연대투쟁이 아니라, 너도나도 가해자가 되기 위한 피해자들의 각개투쟁이 벌어진다. ‘갑’은 선망의 대상이지,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이 아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자조 섞인 시대어가 있던가. 이를 놓고 누구는 ‘추격주의’라고 하고, 또 누구는 ‘연대 없는 평등’이라고 했다. 민주공화정을 능멸하던 최고권력자는 촛불 시민혁명으로 파면시켰다지만, 우리 삶의 존엄을 향한 역정은 여전히 사막의 신기루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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