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63)는 “조금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최근 연구작업을 통해 한국 사회 문제의 핵심을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성 교수팀이 최근 펴낸 연구결과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결과물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라는 제목의 상당히 두꺼운 책으로 묶여 나왔다. 400여 페이지다. 책의 부제는 이렇다. ‘모두를 위한 국가, 약자를 살리는 세상을 위하여’다.
일단 궁금한 것은 왜, 하필이면 지금, 이 책을 펴냈느냐는 것이다. 저널리즘적 관심이다. 그는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대선 전 그와 일단의 학자그룹은 국민성장이라는 문재인 당시 후보의 외곽싱크탱크를 주도했다. 게다가 그는 현 정부가 계승한다고 할 수 있는 참여정부의 핵심 인사였다. 포용국가(inclusive state)라는 국가 비전이 완성되었다면, 책 출간 이외의 방법으로 새로 출범하는 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가 아닌가.
![[인터뷰]‘포용국가’ 책 펴낸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 잘 나갈 때 스스로 경계해야”](https://img.khan.co.kr/newsmaker/1238/20170808_28.jpg)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생각이라면 대선 전에 책을 펴내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보는 시각에 따라 늦었다고도 할 수 있죠. 그러나 우리가 고민하고 준비한 입장에서 볼 때 늦어진 것은 새 정부가 출범하고 정책기조를 잡을 때 그 기점으로 늦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제 책을 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서 책을 낸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나온 것에 만족합니다.”
-언론 인터뷰도 사양하지 않네요.
“우리 고민을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한국 사회가 아직 정상은 아닙니다. 기업도 커지고 경제대국이 되었는데, 국민 개개인은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이에요. 지난 촛불시위 때 터져나온 구호가 무엇입니까. ‘이게 나라냐’였어요. 우리가 왜 이런 상황이 되었고, 고통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원인을 알아야 하고, 이것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전략을 찾고 정책을 만들어야 해요. 저희들이 논의를 진행하면서 핵심은 포용국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 정부가 정책을 전개하는 것을 보면 여러 요소를 갖춰 진행하는데,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기구가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이나 노인연금, 아동정책, 비정규직 해소와 같은 산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걸 실행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부담할 집단과 이익을 볼 집단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시간당 6470원 받다가 7530원 받는다 한들 개개인에게 돌아가면 그 효과는 사실 미미한 겁니다. 하지만 개인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작은데 개개인의 숫자는 많기 때문에 엄청난 부담이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해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분배, 재분배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갈등은 필연적입니다. 보수정권은 갈등을 억압했어요. 부자들 입장을 옹호해서 소득세나 법인세는 손 안대고, 제일 만만한 담뱃세 같은 것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용을 전가시켰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경찰을 불러서 해결하려고 했고요. 지금은 완전히 다르게 가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해요. 정부가 이야기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국민 경제의 소득이나 역량을 키워 소비를 늘린다는 것인데, 단기적으로 보면 이건 엄청난 갈등요인을 안고 있거든요. 그래서 정부도 걱정이 많을 겁니다.”
-책을 보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처럼 청와대에 국가사회경제조정회의(NSEC· National Socio-Economic Council)를 만들자고 제안하던데.
“원래 경제기획원이 하던 기능을 바꾸자는 것인데, 경제를 이야기하더라도 사회적 목적과 가치를 두고 하자는 것입니다. 북유럽의 핀란드나 네덜란드, 아일랜드나 프랑스에서도 이미 비슷한 성격의 국가기구들을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경제만 살린다고 사회를 죽일 것이 아니라 이런 통합적 기구를 설치해 사회·경제적으로 통합적인 기획·관리가 필요합니다. 갈등을 여기서 먼저 예방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포용’을 새 정부가 화두로 삼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듯합니다.
“단순히 막연한 이상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해본 나라들이 있습니다. 북유럽의 노르딕 국가들이나 독일이나 프랑스의 유럽대륙 국가들입니다. 이들 나라의 경로를 조사해보니 결론적으로 세 가지 원리로 집약됩니다. 포용성, 혁신성, 유연성. 지금 당장 그들 나라 수준으로 가거나 모방할 수는 없지만 성공사례로 이 원리들을 활용할 수 있거든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문제나 최저임금을 올리는 문제, 복지 사각지대를 대폭 줄이는 문제 등 포용성을 원칙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것이고, 둘째로는 혁신성을 늘리자는 것이에요. 혁신성에서 중요한 것은 교육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단순암기식, 시험 치고 점수경쟁을 하는 것은 교육을 망치는 것입니다. 각자 재능을 살리고 창의적 사고능력을 키우고, 이런 교육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장점 또는 재능을 발견하고, 다시 토론을 통해 융·복합적 사고를 하게 하고…. 노르딕 국가들이 교육방식이나 수준에서 세계 최고거든요. 교육에서 창의성을 키우니까 포용성이 높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둘은 보완적 관계예요.”
-포용이라고 했는데 영어로 하면 inclusive입니다. 대충 ‘포괄적’, ‘아우르는’ 정도가 사전적 의미예요. 전 세계적으로 학계나 국가 정책적으로 이것에 대한 논의가 많이 있습니까.
“성장만 이야기하고 분배나 복지를 신경 쓰지 않다가 최근 몇 년간 개별국가뿐 아니라 국가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둘러싼 논의가 대표적이지요. 불평등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격차가 큰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IMF, 세계은행, 세계경제포럼 등도 몇 년 전부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대작(大作)이 있는데,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쓴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라는 책입니다. 역사에 현존하는 국가들을 비교했을 때 큰 명제는 포용적 정치제도를 갖느냐 아니면 배제적·배타적 정치체제를 갖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권위적 독재체제냐 민주체제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포용적 정치제도와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는 부흥하고, 반대로 결여된 나라는 몰락한다는 것이 우리의 핵심 개념이기도 합니다. 배척보다 ‘포용’한다는 것은 신뢰와 공정과 협력의 출발점입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결과를 상상 못할 수도 있지만, 서로 만나 설명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보수정부에서 정치권력은 강자에게만 봉사했습니다. 과거 민주정부는 하려고 했지만 뭘 해야 할지 감이 없었고.”
-경험이 쌓여야 사람들이 ‘아, 이게 포용정책이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 있겠죠. 지금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이 말씀한 그런 원리에 비춰봐서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구체적인 정책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곤란합니다.(웃음) A와 B라는 사람이 있을 때 생각은 다를 수 있어요. A가 B의 생각을 단순 절충하는 것과 A와 B의 생각을 융합하고 서로가 서로를 가르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깨우쳐 질적인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거든요. 노르딕 모델을 참고하면요. 그런데 현실은 여러 정책이 다 한 테이블에 올라왔을 때 손해 보는 쪽이 생길 것이고, 반대나 저항세력은 그 수가 늘어나고 강도도 높아질 것입니다. 정책들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의 수는 많지만 개인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미미할 수 있어요. 따라서 이들 개개인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저항은 급증하고 지지가 떨어지는 역전국면이 올 수도 있죠. 이 전체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이라도 당장 통합적 기구를 만들어서 사회적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하면 단기적인 제로섬(zero-sum)이 장기적으로 보면 선순환이 될 여지는 있거든요. 그걸 찾아야지요.”
![[인터뷰]‘포용국가’ 책 펴낸 성경륭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 잘 나갈 때 스스로 경계해야”](https://img.khan.co.kr/newsmaker/1238/20170808_30.jpg)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죠. 신고리 5·6호기 공사 계속 여부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는데, 기존 원자력업계뿐 아니라 한수원 노조나 지역주민들도 반대를 하고 있어요.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3개월 동안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반론을 원자력업계나 보수언론에서 제기한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에 포용적 정책을 적용한다면 어떤 식으로 나가면 되겠습니까.
“최초의 판단이 중요한데 수순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요. 우선적으로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공사를 중단시킨 후 국내외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자들로 기술적인 정밀분석팀을 구성하는 게 급선무죠. 이 때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안전성입니다. 공사 중인 곳의 단층대 등 지질학적 조사가 필요하고 원전 가동할 때 지진이나 해일 등의 위험성은 없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원전은 가동뿐 아니라 가동 중단 후 폐기물의 보존도 골칫거리죠. 몇 세대를 거듭해서 위협할지 모를 폐기물 보존에 따른 위험성과 비용도 고려해야겠죠. 그런 다음 원전을 가동해서 공급받을 것인지, 후손까지 수많은 비용과 위험이 수반되는데도 그것을 감당하고 수용할지 여부를 공론화위원회 등에서 결정하는 단계로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 지지율이 높은 것이 함정일 수도 있어요. 가장 잘 나갈 때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청와대 문건이 나왔으면 조용히 검찰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죠. 경계심을 잃지 말고 신중하게 일처리를 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 참모들이 조언도, 지시사항 이행도 신중하게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면 됩니다.”
-참여정부 때 정책실장을 역임했는데, 현 정부에서 장하성 실장의 역할을 하셨죠. 조언할 것이 있습니까.
“장 실장과는 같이 일을 안 해봐서 잘 모릅니다만, 제 생각을 좀 말씀드리지요. 정부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면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이 생깁니다.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 문제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상황을 방치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그래서 정부는 어느 시기에, 어느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할까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살피고 고민하는 것이지요. 저는 2008년 2월 25일, 5년간의 공직생활에서 물러났는데 그 때 생긴 직업병이 요즘도 계속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비정규직 해소, 최저임금 인상, 복지증진, 원전 폐쇄 문제, 증세 문제 등 여러 가지 정책 이슈가 쉴 새 없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이 이슈들이 초래할 분배갈등, 정치갈등이 동일한 시기에 동조화되고 반대세력이 넓게 연대하면 정책 추진에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문제에 대해 옛날처럼 늘 분석하고 대안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관찰을 종합하면, 초기 청와대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그간 억눌린 정책과제들을 힘차게 제기하는 건 좋으나 장차 추진과정에서 발생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통합적·예방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부족하지 않나 싶어 걱정을 좀 하고 있습니다. 직업병 가진 사람이 보는 훈수 정도로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인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좋은 세상은 상상일 수도 있고, 이미 구현된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대안적인 세상을 상상하고, 그 세상으로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게 다 분배와 재분배 문제이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필요한 것은 좋은 세상을 상상해내는 것이고, 토론하고, 힘을 모으는 것이겠죠.”
<글·사진·정리 정용인 기자·우철훈 기자·정상빈 인턴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