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세상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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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늘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예컨대 20세기에 꿈꾸던 21세기의 물류란 바코드 대신 RFID가 움직이기로 되어 있었다. RFID는 전파를 통해 대상을 인식하는 기술로, 그 전파의 종류와 세기에 따라 하이패스에서 교통카드, 전자여권까지 이미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자신의 살 길은 찾은 기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코드를 대체할 것 같지는 않다.

스캔 결제는 이제 대세다. 사진은 QR코드를 통한 중국 알리페이의 결제방식. 유튜브

스캔 결제는 이제 대세다. 사진은 QR코드를 통한 중국 알리페이의 결제방식. 유튜브

바코드를 스캔하는 일은 꽤나 노동집약적이고 번잡한 일이다. 상품마다 위치가 다르고 겉포장 속으로 숨어 들어가기도 하니 숙련되지 않으면 버벅거리기 쉽다. 아무리 자동화가 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바코드 스캐너는 사람 손에 쥐어져 있다.

반면 RFID는 그냥 지나가기만 하거나 살짝 스치기만 해도 인식이 되니 편리하다. 보급의 애로사항으로 여겨졌던 단가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스캔하고 있다. 바코드 인쇄비보다 칩이 저렴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비슷한 상황이 또 있다. 요즈음 등장하는 대개의 스마트폰에는 RFID의 일종인 NFC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근처에 가져다 대기만 해도 교통카드처럼 ‘띠링’ 인식이 되니, 결제 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되었다. 앱을 굳이 띄우지 않아도 애플이나 구글이 제공해주는 기능을 활용할 수 있으니 쓸 수만 있으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애플 페이와 안드로이드 페이가 들어오지 않는 나라에서는 그저 그림의 떡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QR코드라 불리는 2차원 바코드였다. 모바일 간편결제의 선두주자인 중국의 알리페이(5.2억 사용자)와 위쳇페이(6억 사용자)가 모두 이 방식을 쓰면서, 한물간 기술로 여겨졌던 바코드가 재조명을 받았다. 일본의 라인 페이니 미국의 월마트 페이니 후발주자들도 모두 바코드 스캔으로 결제를 처리한다.

카메라를 구동시켜 바코드를 읽는 일은 NFC처럼 가져다 대기만 하면 끝나는 일에 비하자면 너절해 보인다. 하지만 낡기는 했어도 못 쓸 물건은 아니다. 그럭저럭 돌아간다. 사용자만 절실하다면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물건 팔고 싶은 판매자들은 바코드를 잘 보이게 내걸어 놓고, 구매자들은 현금 없이 결제도 하고 포인트도 쌓고 때로는 충전한 돈으로 투자도 할 수 있다니 기꺼이 카메라를 켠다. 때로는 구매자가 주섬주섬 바코드를 띄우고 판매자는 기꺼이 바코드 스캐너로 스캔하기도 한다. 혜택이 불편함보다 크면 기꺼이 우물을 파는 것이 사용자다.

흥미롭게도 스냅챗도 페이스북도 모두 자신들의 메신저에 일종의 QR코드를 적용했다. 친구를 등록하고 봇을 불러내는 등 다양한 기능을 스캔으로 불러낼 수 있다.

폰에 카메라로 세상을 보여주고 일을 시키는 일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얼마 전 발표된 기능인 구글 렌즈는 굳이 바코드가 아니라도 좋다며, 인공지능으로 세상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폰의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피사체를 검색해주는 것은 기본이요, 공유기에 적힌 패스워드 등 설정정보를 보여주면 와이파이를 자기가 알아서 설정하는 식이다. 스캔은 어느새 미래가 되고 있었다.

친구를 등록하고 봇을 불러내는 등 다양한 기능을 스캔으로 불러낼 수 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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