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하지. 요즘 부모들 굉장히 똑똑하고 이런 분야 책도 많이 보고 지식도 풍부한데 자녀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많이 속상해 하잖아. 왜 그런 부모하고는 대화가 안 되고, 상담실에서는 될까?”

부모와 자녀의 거리감을 표현한 일러스트. 만화그리는목각인형
“선생님, 도대체 딸아이 속을 모르겠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계획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차라리 확 놀기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모양도 안 내고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주변에 20대 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 속이 터진다며 상담 보내고 싶다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어떤 상담사가 좋은지, 마치 특정 분야의 유명한 의사를 찾듯이 부지런히 알아보고 물어본다.
“저는 아이들하고 대화하며 놀아요”
예전에 부모들이 자녀를 상담 보내고 싶을 때는 사회 적응을 못해서 집단 안에서 말썽을 부리거나, 본인들과 충돌이 잦아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 나이가 연상시키는 무모함·도전·열정·생기 등이 자녀에게서 보이지 않을 때, 즉 자녀들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무기력하고, 외부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부모들은 진지하게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찾는 것 같다. 자녀들이 제멋대로이고, 부모 말을 거역하는 것이 걱정이었던 세대와는 차원이 다른 염려가 한가득이다.
나는 이런 경우 30∼40대 상담가들에게 케이스를 맡긴다. 나이 차가 주는 물리적인 거리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너머의 정신세계에 요새 20대 아이들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아니 뭐 어떤 열정이 있어야 할 것 아녜요! 차라리 사내자식답게 확 좀 터트리거나 아님 대들거나, 뭔가 미쳐서 어떤 일을 하면 이렇게 걱정되진 않겠어요.”
얼마 전에 모임에서 만난 아버지가 자녀에 대해 토로하듯이 한 이야기다. 툭 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진하게 묻어 있다. 저 말 뒤에 못다한 말이 얼마나 많을까? 방문을 닫고 꼼짝도 안 하는 자녀를 옆에서 보는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울까? 나도 인생의 선배, 또는 상담가로서 열정 없는 자녀, 열정 없는 세대를 기다리고 이해하려던 심정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열정’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단어가 가져왔던 불안의 무게들이 기억나면서 참으로 아득한 기분이 든다.
나 대신 상담을 맡은 젊은 상담가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요새 애들 참 어렵지?”
그러나 뜻밖의 말을 한다. “선생님, 아이들이 굉장히 똑똑하고 섬세해요. 참 다양한 생각을 하더라구요. 그래도 여리고 눈물 많은 걸 보면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것 같고요.” 나의 염려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얘기를 하긴 해? 애들이 말하는 것 싫어하고, 영 매가리가 없을 것 같던데.”
“네, 그렇긴 한데 흐름을 좇아가다 보면 말이 이어지는 지점이 나와요. 그때 공감해주면 대화가 되더라구요.”
솔직히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이다. 나뿐만 아니라 ‘소통’과 ‘공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요새 부모들도 당연히 시도해 봤음직한 이야기가 아닐까?
“참 이상하지. 요즘 부모들 굉장히 똑똑하고, 이런 분야 책도 많이 보고, 지식도 풍부한데 자녀들과 대화가 안 된다고 많이 속상해 하잖아. 왜 그런 부모하고는 대화가 안 되고, 상담실에서는 될까?”
“아마 부모님들과는 대화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일 거예요. 부모님들이야 어떡해서든 대화를 통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아이들을 가이드하고 싶어한다면 저는 그냥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저는 아이들하고 대화하며 놀아요. 연예인 얘기도 종종 하고.”
“어려운 얘기야. 연예인 얘기도 좋지만 언제까지 그런 얘기만 하겠어? 사실 나도 어떤 때 답답하고 공감하기 힘들 때가 있어.”
“당연하죠. 가족은 남이 아닌데 어떻게 마냥 쿨할 수 있겠어요? 상담가는 남이기 때문에 가능하죠.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건강한 가족관계를 위해선 아웃소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웃소싱?”
“예를 들어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같이 풀 친구가 있다면, 그 부분은 친구들에게 맡기는 거죠. 또 자녀가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상담가에게 얘기하고 풀 수 있다면 그 부분은 상담가에게 일임하고요. 부모라고 해서 자녀의 마음을 다 알아줘야 한다면, 즉 부모가 친구도 되고, 상담가도 돼야 한다면 부모님들 입장도 일관적이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 다 해주고 싶어서 모든 역할을 떠안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역할분담을 했을 때 관계가 더 좋아지는 걸 종종 보지. 관계의 아웃소싱, 정말 맞는 말이다!”
중년을 넘은 사람들끼리 있으면 ‘요새 애들’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우리 땐 뭔가 근성이 있지 않았나? 아님 독을 단단히 품고 하거나, 오기가 생겨서라도 성공에 집중했지. 요새 애들 보면 젊은애들이 패기가 없어. 돈은 쉽게 쓰고.”
“젊은애들, 패기는 없고 돈은 쉽게 쓰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던 세대로서 저 말이 많은 부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그렇게 보인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쟁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고, 어쩌면 선배나 부모가 그들을 위해 하는 말은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경쟁과 스트레스를 이기는 노하우를 스스로 찾아야 했다면 그것은 꽤 절실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 과음을 하기도 하고, 상담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48개월 할부로 외제차를 사기도 한다. 10일간 여행을 가기 위해 1년간 모은 돈을 쓰기도 하고, 아예 취업할 생각을 안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행에게 아웃소싱 해야겠군.” 내가 중얼거렸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부모나 어른들이 다 해결해주려고 하지 말고 관계를 위해 아웃소싱 하라며? 만약 나의 자녀가 월급쟁이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행가는 데에 큰 돈을 썼다면 그걸로 타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여행에게 아웃소싱 했다 생각하면 좋겠다는 거야. 여행을 통해 또래 자신감이 회복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은 부모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하하. 선생님. 재밌네요. 여행에게 아웃소싱 했다라니. 자녀나 젊은 세대에게 그들만의 서바이벌 전략이 있고, 그걸 존중하신다는 얘기로 들려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나면 다른 관계도 좋아질 거예요.”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상담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좋은 상담가를 만나 상담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꽉 막혀 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때 오히려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 뚜렷해지고, 그 채움이 풍성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