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사회의 황금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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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위험사회의 황금률

최근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 대중적으로 널리 소비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1970년대에 경제성장으로 육류 소비수요가 늘어난 일본에 수출을 하기 위해 대형 양돈산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장려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안심과 등심만 수입해 갔기 때문에 나머지 부위, 즉 삼겹살, 족발, 머리, 껍데기, 내장 등은 헐값으로 국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일본에서 대형 양돈을 하지 않고 고기를 수입해 간 이유였다. 돼지 배설물 처리가 너무 고약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우리나라 사람은 돼지 배설물 치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나라 물과 땅은 오염되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렇게 일본의 이기적인 행태에 대해 부아가 치밀다가 조금 지나지 않아 낯 뜨거운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얼마 전에 돼지 배설물 치우는 일을 하다가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네팔 등지에서 온 젊은 청년 몇 사람들이 7000마리의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경북 군위의 한 농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돼지 배설물 치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지하 2m의 배설물 저장통으로 사다리를 이용해 내려가서 바가지에 배설물을 담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돼지 배설물에서 발생하는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두 명이 사망한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온 청년들을 기다린 것은 돼지 배설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위험하고 고된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육식 소비를 위해 운영되는 대규모 공장식 축산에서 왜 이들이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돼지 배설물 때문에 대형 양돈업을 우리에게 떠넘겼다고 일본을 비난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가?

이런 질문을 떠올리던 중에 원진 레이온 공장 사례가 생각났다. 원진 레이온 공장은 1960년대 일본 동양 레이온에서 중고 기계를 수입해서 비스코스 인견사를 만들던 곳이었다. 이 공장은 작업과정에서 치명적인 유해물질인 이황화탄소와 황화수소 가스가 발생하여, 노동자들이 중독되고 사망하기도 했던 산재의 대명사였다. 노동부는 무재해기록증을 발급하는 등 감시마저 소홀히 했다.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과 시민사회의 치열한 투쟁으로 인해 결국 이 공장은 1993년에 폐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이온 생산 기계들은 그 이후에 중국으로 (나중에는 북한으로) 팔려갔다고 한다. 우리에게 유독했던 기계들을 중국이나 북한에 떠넘기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리는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가 되었던 경험을 했으면서도 왜 제국주의적 행태를 답습하는 것일까? 식민지 시절에 경험한 제국주의가 내면화된 탓일까? 우리가 제국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려면 우리가 그러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받고자 하는 대접 그대로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것은 인류사회의 황금률이다. 점점 심해지는 기후변화, 방사능 오염, 미세먼지, 새로운 화학물질 등 보이지 않는 다양한 위험이 점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위험사회에서도 이 황금률은 지켜져야 한다. 위험을 특정한 민족, 계급, 집단, 지역에 돌려놓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별개이고,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위험이 눈에 보이지 않고 감지되지 않을수록 우리는 더 연대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황금률을 지켜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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