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머리’보다 ‘마음’이 통해야 대화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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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중요한 요소는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또한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지름길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중년은 어느 장소나 시간에서나 의사소통의 고수가 되어야 한다. 중년은 말 그대로 중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도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래로는 한참 자라고 있는 자녀 사이 중간에 위치한다. 조직에서도 상관과 부하직원 사이에서 서로간의 다리 역할을 잘 해야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중년은 의사소통을 잘하기보다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려고 하는 시기이다. 윗세대는 이미 한물 간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고 어린 사람들은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고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만큼 이제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통하지 않는 중년의 부부들 늘어

한방에는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다.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기와 혈이 잘 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잘 통하지 않으면(不通) 병이 든다는 말이다. 병들면 당연히 아프다. 우리 말에서는 병든다는 것과 고통스럽다는 것을 동일한 ‘아프다’는 말로 표현한다. 그래서 병들면 고통(痛)이 따른다는 말이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은 비단 몸의 건강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서로 통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른다. 사람 사이에 서로 잘 통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년에 서로 통하지 않는 부부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6월 27일에 발표된 헬스&라이프 매거진 <헤이데이>와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가 공동으로 한 ‘대한민국 중·장년의 일상에서의 행복’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0~50대 중년의 삶의 만족도가 어느 연령층보다도 낮다. 행복연구센터는 “50대 남성이 여타 연령대와 비교해서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분과 행복감이 낮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의 중·장년 중 가장 불행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50대 남성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지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30대 남성은 여성보다 일상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40대부터 역전되어 50대에는 남녀 간 행복도 차이가 상당히 커진다.

이 보고서는 여성의 경우 40대에 극에 달하는 육아부담이 50대에 사라지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고 해석했다. 50대 남성의 경우 부모 봉양과 자식 부양이 더해져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이 상당해지기 때문에 모든 집단에서 삶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해석했다. 물론 이 해석도 타당하다. 가장으로서의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부담을 자연스럽게 풀 수 있는 대화의 기술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남성 못지 않게 여성들도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여성들은 마음속의 부담을 훨씬 자연스럽게 표현하면서 ‘속풀이’를 한다는 데 있다. 여성들은 모든 연령층에서 남성보다 의사소통 기술이 높다. 특히 중년에 이르면 주위에 자신이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진다.

반면에 남성의 경우에는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줄어든다. 의사소통의 기술과 대상이 줄어들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머리가 잘 통해서 좋다”는 말은 없어도 “마음이 잘 통해서 좋다”는 말은 있다. 그만큼 의사소통이 잘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해야 한다. 마음이 잘 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말’이 통해야 한다. 즉, 대화가 잘 통해야 한다.

상대방 감정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여성

대화를 통해 무엇을 소통하려고 하는지 그 목적에 따라 대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는 대화의 가장 큰 목적은 ‘지식’이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다. 매일매일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얻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필요한 상대방에게 정확히 알려주어야 한다. 이렇듯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기 위해 하는 대화를 사리대화(事理對話)라고 한다. 비유적으로 말해 지식과 정보는 머릿속에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속칭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사리대화에서는 주고받는 지식이나 정보가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즉 사리에 합당한 지식은 맞는 지식이고 사리에 적당하지 않은 정보는 틀린 것이다. 길을 잘 모르는 약속장소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먼저 택시기사에게 정확히 어디를 가는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는 약속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얼마나 걸리는지를 묻는다. 그러면 당연히 택시기사는 얼마 정도 걸리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이 예에서 보듯이, 사리대화에서는 정확히 묻고 답하는 ‘말하기’가 기본이다.

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또한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는 지름길이다. 나의 감정을 잘 헤아려줄 때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잘 이해해 준다고 여기며,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믿음을 가지게 된다. 상대방도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잘 받아줄 때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더욱 신뢰하게 된다. 이 과정이 되풀이되면, 더욱 더 상대방을 신뢰하게 되고 더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의 감정을 알아주지 못하거나 무시할 때 마음이 상하게 되고 더 이상의 대화를 하려는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거나 되풀이되면 결국 인간관계는 삭막해지고 친밀한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다. 이처럼 감정을 주고받기 위한 대화를 ‘심정대화(心情對話)’라고 부른다. 감정은 ‘마음’ 속에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심정대화가 잘 이루어지는 관계를 ‘마음이 통하는’ 관계라고 한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모든 대화에는 사리대화의 요소와 심정대화의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위의 대화의 예에서 “약속장소까지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에 대해 “약 30분쯤 걸린다”는 대답을 했다면 이는 정보를 알려주는 사리대화가 된다. 하지만 약속장소까지 걸리는 시간을 묻는 대화에는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만약 이 마음에 반응하여 “시간에 늦을까봐 걱정하는군요”라고 대답했다면 이는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정대화가 된다. 심정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내용보다 그 밑에 깔려 있는 감정에 반응해야 한다. 차마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한 속마음까지 상대방이 이해하고 반응해 준다면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상대방이 너무 믿음직하게 느껴질 것이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의사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바로 상대방의 감정에 섬세하게 반응한다는 의미이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고 감정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이지 ‘머리’가 통하는 사이가 아니다. 물론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다 보면 친밀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그 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의 배려와 관심을 느껴서 친해지는 것이지 단지 주고받는 지식이나 정보의 양에 의해 친한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투다가 정들었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 다투는 것도 관심이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에 정들 수 있는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syhan@korea.ac.kr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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