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상대의 매력이 나의 발목을 잡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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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맹목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눈멀게 한다. 그래서 어느 시기 나의 온 맘을 사로잡고 흥분시켰던 상대의 매력이 또한 나를 힘들게 가두는 족쇄가 되나 보다.

“그 사람 건강하냐? 가족들도 다 건강한 편이고?” 결혼 얘기를 꺼내는 S에게 친정어머니의 첫마디였단다. 반색하며 ‘그렇다’는 그녀의 대답에 어머니는 예상 외로 긴 한숨을 쉬시며 “너처럼 병약한 애를 그 사람과 그 댁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부 이미지./pixabay mohamed1982eg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부 이미지./pixabay mohamed1982eg

그때는 알 수 없었던 그 말은 결혼 후 바로 적중했단다. 결혼 전, 가녀린 그녀를 감싸주며 보호하던 남편은 늘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좋아 보였다. 외향적인 남편은 결혼 후에도 여전히 밖으로 나가길 좋아했고 돌아다녀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며 주말마다 가족을 위해 외출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점점 아내가 체력적으로 못 쫓아가자 “몸만 가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서 못가느냐”며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가 부실하다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좋아 보이는 바로 그 면이 결혼 후 나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이야기도 결혼 전 친정어머니가 당부하듯 하신 이야기란다. 살림밖에 모르던 어머니는 어떻게 그 모든 걸 아셨을까?

결혼 전엔 좋았는데 결혼 후 족쇄로
몇 달 전에 만났던 부인이 생각났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는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다. 다소 소심해 보이는 그녀는 다소곳한 자태에 몸짓이 불안해 보였지만 눈빛은 참 맑고 깨끗했다. 내가 함께 나누고 싶은 얘기를 물었을 때 그녀는 주저하며 말문을 열기 어려워했다. 나는 한동안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으나 그녀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입술만 문지른다.

“말씀하기 힘든 걸 보니 마음이 많이 무거운가 보군요.” 순간,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대답을 대신한다.

시간이 좀 지나자 조심조심 남편 얘길 꺼낸다. 20여년 전 그날도 오늘같이 화창했단다. 책 읽기 좋아하는 그녀는 시원한 마룻바닥을 찾아 고양이와 벗하며 뒹굴뒹굴 소설 삼매경에 빠지려던 차였다. 그런데 며칠 전 소개팅으로 만났던 그가 일방적으로 재회를 약속한 날인 게 떠올라 잠시 망설였다.

“12시입니다. 12시에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오실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겠습니다.” 그날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돌아서는 그녀를 향해 그가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왜 그날 더 분명하게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왔는지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때는 늦었단다.

왜소한 체구에 일방적으로 말하는 그의 모습이 거슬렸지만 무엇보다 중간에서 소개해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두 번째 만남부터는 거슬렸던 모습이 좋은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까지 함께 산단다.

“달라도 너무나 달라요. 저는 원래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려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고 일방적이에요.”

“정말 많이 답답하고 속상했겠어요? 말이 안 통하면 속 터지지요. 남편과 어떻게 지내고 싶었나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라요. 저는 공원을 산책하며 걷기도 하고 영화도 보며 지내고 싶은데 그 사람은 왜 목적 없이 그냥 걷느냐며 차라리 등산을 가서 산 정상을 밟으며 좋은 공기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고 밀어붙여요. 저는 체력적으로 등산이 힘들고 싫거든요. 그래도 남편을 생각해서 몇 번 따라갔어요. 정말 힘들게 갔다 왔는데 제 이런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할 수 있다며 더 힘든 것을 계획하며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했어요. 이것뿐만 아니라 매사에 본인이 모든 걸 직접 참견해야 하니 말하고 싶지 않고 아예 제가 입을 다물어 버렸어요.”

부부가 말이 안 통하면 속 터지지요
“아… 얼마나 힘드셨으면 차라리 말을 안 하겠어요.”
“안 한다기보다 그냥 남편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둬요. 말해 봤자 어차피 내 의견은 무시될 테니.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그런 나를 생각이 없는 여자라는 둥, 자기가 뭐든 다 알아서 해야 되니 자기만 힘들고, 너는 세상살이 걱정 않고 팔자가 좋다고 하니 듣고 있으면 열불 나서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아요.”

“무시된 건 난데, 오히려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 어이없고 억울하고 기가 막혔겠어요?”

처음에 말 꺼내기 힘들어 하던 그녀의 입에서 그동안 쌓였던 가슴속 응어리들이 뭉텅뭉텅 목구멍을 타고 뿜어져 나왔다. 가녀린 체구에 저 힘겨운 사연들을 품고 살았을 세월을 생각하니 참 무겁고 짠했다.

“말없이 견디고 사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네. 때때로 좀 지나치다고 생각될 때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많이 절망스러운가 봐요.”

“네. 저는 이런 것들이 끝이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점점 더하는 거예요. 이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희망이 안 보여 답답하고 참 막막하겠어요. 남편분께 이런 답답한 마음을 얘기했나요?”

“네. 전에는 했었어요. 남편이 애쓰는 것은 고맙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불편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오히려 자기가 가정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데 제대로 몰라준다고 야속하다며 신경질을 내니 그냥 참고 지나가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제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에요. 그 사람 누굴 만났어도 그렇게 살아야 직성이 풀릴 사람이에요. 주변에서 모두들 알아요.”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많이 혼란스럽겠어요. 그런데 모두가 다 알 정도라면 남편분의 행동이 주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나 봐요.”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50) 상대의 매력이 나의 발목을 잡게 되다니…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뭐든 남편이 알아서 척척 하니 고맙다고 해요. 그러나 가족들은 늘 함께 사는데 다 자기 맘대로 하면 누가 좋겠어요. 물론 의견을 물어는 봐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결국은 자기 뜻대로 하니 누가 말하고 싶겠어요. 얘들도 이젠 말 안 해요.”

상대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자기 기준으로 열심이면 주변 사람들은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가정을 위한 헌신적 사랑임을 강조하며 자기 뜻대로 할 때 가족은 하소연할 곳이 없다. 그래서 더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좋기도 하지만 가족들은 참기 힘들고 지치겠어요.”
“네. 주변 친구들은 때론 불편할 때도 있지만 남편 덕분에 모임이 지금까지 잘 굴러간다고들 얘기하고 고마워해요.”
“그 얘기 듣고 어떠셨어요?”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저도 결혼 초에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추진력 있고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덫에 걸린 것처럼 괴로워요.”
“남편의 일방적인 태도 안에 두 모습이 함께 있네요. 추진력 있는 면과 덫을 친 것 같은 면.”
“그러네요….” 그녀가 생각에 잠긴다.

우리는 상대의 어느 한 면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 그 면의 그림자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창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기분이 영원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대의 어떤 점이 치명적으로 부각될 때 왠지 내 모든 행복을 앗아갈 것 같고, 그 단점 또한 마냥 단점으로 남아있을 것 같아 불안해한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맹목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눈 멀게 한다. 그래서 어느 시기 나의 온 맘을 사로잡고 흥분시켰던 상대의 매력이 또한 나를 힘들게 가두는 족쇄가 되나 보다.

<서송희 만남과 풀림 대표>

한성열·서송희 부부의 심리학 콘서트 ‘중년, 나도 아프다’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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