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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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임미리 지음·오월의 봄 펴냄·2만2000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지금도 거의 모든 집회현장에서 불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이 노랫말은 한국 저항운동에서 ‘열사’가 가지는 상징성과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다. 9년 만에 이 노래가 제창된 지난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연설 도중 4명의 ‘5월의 열사’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5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죽음들이 있었고, 그 죽음이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슬픔과 분노, 부채감으로 새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열사’라는 호명조차 이제는 낯선 시대다.

[신간 탐색]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책은 한국 저항운동사의 한 열쇳말이기도 한 ‘열사’와 그 호명 구조를 분석하며 열사 호명을 둘러싼 저항세력의 전략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는 열사 호명이 ‘선택과 배제’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전개돼 왔음에 주목한다. 저자는 저항적 자살을 ‘당위형 자살’과 ‘실존형 자살’로 구분하는데, 저항운동 진영에서 열사 호명은 ‘당위형’인 민족·민주열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한다. ‘실존형’에 해당하는 노동자·농민 등의 죽음은 전선운동의 목표인 ‘정권 타도’와 연관성이 적다는 이유로 매무 드물게 호명됐으며, 여기엔 저항운동 진영 내부의 권력구조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이제 ‘열사’란 이름이 가지는 시효성도, 저항운동에 있어 단일한 전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제 저항운동이 더 이상 열사와 열사 호명에 기대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전선은 공감과 공감이 교차하고 연대와 연대가 접합되는 지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그 새로운 전선에서 죽음을 요구하는 정치는 살아 싸우는 정치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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