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생 철호들’의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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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1969년생 철호들’의 어린시절

도련님 아프면 수프라도 좀 드세요
최철호 지음·이매진·1만2500원

서울 봉천동 산 42번지에는 말썽쟁이 철호가 살았다. 직업군인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 누나 둘과 형 하나, 철호 여섯 식구다. 철호의 단짝 정민이는 호떡장사하는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살고 있고, 기성이의 아버지는 폐병을 앓고 있다. 셋은 봉천동을 휘젓고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다. 연탄재로 골목길 야구를 하고, 흑백 텔레비전으로 <서부소년 차돌이>를 보고, 버스 회수권 10장으로 11장을 만드는 마법을 배운다. 우연히 놀러간 부잣집에서 ‘수프’라는 걸 알게 되고, 라면 수프를 물에 섞어 우아하게 따라해 보다가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1969년생 철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강남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사모님’들이 활보했다. 학교에 가면 한 반에 80명이고 한 학년은 20반이었다. 시기적으로는 유신시절이었다. 이런 시대를 재현하는 데 가난에 대한 슬픔이나 쥐어짜낸 사회비판적 시선도, 회한도 없다. 모두가 가난해서 아무도 가난한 줄 몰랐다.

소설 전체가 드라마라기보다 초고화질 카메라로 담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추억은 아름답다기보다 사실적이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포르노 잡지를 보며 성에 눈뜨는 과정이나 매타작 피하려 성적표 긁어내다 들켜서 더 두들겨 맞는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무덤덤한 시선으로 재현하는 데 공력을 쏟았다.

작가는 1969년에 서울 봉천동에서 태어났다. 2007년 KBS 드라마 시티에 방영되고 상도 받은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를 썼다. 2015년 남양주시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세상을 뜬 뒤에야 그가 잡지 <사과나무>에 실은 연재소설이 책으로 나왔다. 눈물 젖지 않은 변두리의 삶을 그려낼 줄 아는 작가의 재능이 뒤늦게 아쉬워진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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