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장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씨 없는 수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또한 “사실은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이 만든 것이 아니라더라”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27일, 과학의 달을 기념하는 ‘한국을 빛낸 명예로운 과학기술인’ 우표의 세 번째 묶음이 선을 보였다. 올해의 주인공은 ‘과학기술정책가 세종대왕’, ‘화약무기과학자 최무선’, 그리고 ‘유전육종학자 우장춘’이었다. 우표 낱장에는 각각 주인공의 업적을 요약한 작은 아이콘이 붙어 있는데, 세종대왕은 한글, 최무선은 불꽃, 우장춘은 배추 모양으로 되어 있다.
즉 우장춘(1898~1959)의 대표 업적은 배추, 나아가 배추속(屬) 원예작물의 유전 연구와 품종 개량이다. 이제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든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다. 그러나 ‘씨 없는 수박’ 속설 역시 완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숲을 보아야 나무가 제대로 보인다
일단 씨 없는 수박의 정체부터 파헤쳐 보자. 씨 없는 수박은 엄밀히 말하면 씨가 없는 것이 아니고 씨가 여물지 못하고 아주 작게 형성된 수박이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보통 수박의 꽃에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약품을 바르고, 거기에 보통 수박의 꽃가루를 수정시킨다. 세포가 분열할 때에는 일시적으로 염색체가 두 배로 늘어나고, 그것을 새 세포 둘이 반씩 나눠가짐으로써 어미세포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들었다?](https://img.khan.co.kr/newsmaker/1228/20170530_64.jpg)
그런데 콜히친은 식물세포에서 염색체의 분리를 방해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콜히친의 영향을 받은 식물세포는 염색체가 분리되지 않고 보통 세포의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콜히친 처리를 한 수박의 암술에 보통 수박의 꽃가루가 결합하면 염색체를 반씩 나눠 가진 씨앗이 생기는데, 이것을 심어 기른 수박은 보통 수박의 1.5배라는 비정상적인 염색체 수를 갖게 되므로 씨앗의 원천이 되는 생식세포가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왜 이런 실험을 했을까? 일본의 농학자 기하라 히토시(木原均·1893∼1986)가 그 주인공이다. 우장춘은 일본에서 기하라와 친밀하게 지내며 그의 연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한국에 온 뒤에는 농민이나 기자들에게 과학적 육종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한 시범사례로 씨 없는 수박을 여러 번 활용했다. 그런데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기자들이 ‘우장춘 박사가 개발한 씨 없는 수박’이라고 보도하는 바람에 씨 없는 수박이 우장춘의 발명인 양 항간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씨 없는 수박 자체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우장춘이 세계 최초로 그것을 만들어 냈는지 궁금한 것이므로, 이 정도에서 “아, 사실이 아니라니 아쉽군”이라고 생각하며 멈출 것이다. 하지만 기하라가 이 실험을 한 배경은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하라는 학생 시절부터 밀의 염색체를 연구하면서 배수체(몇 곱절의 염색체를 가진 개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배수체들 가운데는 정상 염색체를 가진 것보다 사람에게 쓸모 있는 형질을 보여주는 것들이 종종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배체의 토마토는 보통 토마토보다 비타민C가 풍부하고, 3배체의 과일이나 채소는 보통의 것들에 비해 열매가 크다거나 씨가 없는 따위 장점을 지니기도 한다. 씨 없는 수박도 이와 같은 배수체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우장춘의 배추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우리는 ‘우장춘 박사’라는 호칭으로 그를 기억하다 보니 그가 계속 상아탑에만 몸 담았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우장춘의 경력 대부분은 상아탑 밖에서 쌓은 것이다.
우장춘은 1916년부터 1919년까지 도쿄제국대학의 부설 전문학교에 해당하는 농학실과를 다녔다. 졸업 후에는 도쿄 농사시험장에서 기수(技手)로 오래 일했고, 17년이 지난 1936년에야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17년 동안 우장춘은 나팔꽃, 페튜니아, 유채 등 다양한 원예작물의 품종 개량에 참여하면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유채의 품종을 개량하면서 여러 조합을 시험했는데, 심지어 유채와 다른 종(예를 들어 배추와 양배추)을 교배해도 유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씨 없는 수박은 우장춘 박사가 만들었다?](https://img.khan.co.kr/newsmaker/1228/20170530_65.jpg)
그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우장춘의 실용 육종 연구는 기하라의 주도 아래 발전해온 염색체 연구의 전통과 교차하게 되었다. 염색체가 10쌍인 배추와 9쌍인 양배추를 교배하면 두 종의 염색체가 그대로 합쳐져서 염색체가 19쌍인 유채가 된다는 것을 우장춘이 밝혀낸 것이다. 우장춘은 양배추, 배추, 흑겨자 등 배추속에 속하는 3종의 식물들이 교배를 통해 다른 종을 ‘합성’할 수 있다는 것을 정리하고, 이를 ‘우장춘의 삼각형(U’s triangle)‘으로 표현했다.
요컨대, 우장춘의 연구의 진가는 당대 일본 생물학의 상황을 함께 고려할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염색체의 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할 수 있으며, 여러 개체의 서로 다른 염색체를 한 개체 안에 합칠 수 있다는 등의 생각은 기하라의 배수체 연구에서도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었다. 우장춘은 이러한 생각을 한 종이 아니라 같은 속의 인접종에 대해 확장한 결과로 종의 합성을 발견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속설은 왜 끈질기게 살아남는가
속설이 끈질기게 살아남는 가장 큰 까닭은 그것이 알아듣기 쉽고 사람들이 듣기를 바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염색체니 배수체니 하는 이야기보다는 세계 최초로 뭔가를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훨씬 알기도 쉽고 들었을 때 기분도 좋지 않겠는가?
최근에 대중매체에서는 우장춘의 업적 가운데 배추의 품종 개량을 부각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오늘날 도톰하고 아삭한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우장춘 박사 덕분”이라는 이야기는 씨 없는 수박 못지않게 간결하고 기억에도 강하게 남는다.
물론 우장춘이 1950년에 귀국하여 남긴 업적 중 배추의 품종 개량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김장용 배추 하나로만 우장춘을 기억한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좀 길고 복잡하더라도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 업적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국제 생물학계의 흐름 안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학의 달의 과학기술인 기념사업이 ‘한 줄 요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