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희망찬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만 출근길의 태양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일의 출근이 두려워 잠들기 싫은 불면의 밤은 1년에 몇 차례뿐인 휴가 앞에 ‘일시정지’할 때까지 이어지고, 그래서 ‘가장 안전한 건 이불 속이야’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본들 내일도 어김없이 태양은 뜨고 일터로 향해야 한다. 짧아야 8시간,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직장에서 보내지만 왜 우리는 늘 그곳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럼에도 회사에 다녀야 한다면,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월급쟁이로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뭘까.
최근 <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위즈덤하우스)를 펴낸 유인경 작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3년 전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가 10만 부 넘게 팔리며 직장인 여성들에게 ‘생존 노하우’를 전수했던 그는 30여년 기자로 일하며 체득한 직장생활 노하우를 책에 담아냈다.
![[인터뷰]「퇴근길, 다시 태도를 생각하다」 펴낸 유인경 작가 “나를 우아하게 지켜내는 힘은 태도입니다”](https://img.khan.co.kr/newsmaker/1224/20170502_58.jpg)
왜 다시 ‘태도’일까
OECD 국가 중 최장의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일 공화국’이 대한민국이고, 직장인 10명 중 9명이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는 조사까지 나왔다. 후진 직장문화와 비루한 회사생활을 ‘사이다’처럼 씹어주는 각종 콘텐츠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이 시점에, 왜 다시 돌고돌아 개인의 ‘태도’일까.
“직장에서 행복감과 만족감, 자아 성취를 모두 얻고 누리는 건 사실 공상과학 소설에서도 나오기 힘든 얘기죠. 회사도 상사도 나를 지켜주지 않고, 결국 믿을 것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욱’할 때마다 들이받다가는 결국 그 손해를 자기가 볼 때가 많죠. 기성세대와 기업문화가 원하는 태도로 순응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가 30년 동안 ‘당해본’ 결과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실용주의와 나의 평화였어요.(웃음) 사실 눈물 어린 기도를 한다한들 쉽게 바뀌는 직장이, 상사가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어떻게 요령 있게 대응하느냐, 결국 협상력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죠.”
요컨대 유인경 작가가 말하는 ‘태도’란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일과 관계에 대한 태도가 ‘한끗 차이’로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을 담았다. ‘좋은 리액션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과를 두려워하지 마라’ ‘경청은 나를 위한 것이다’ ‘매사 예민하면 나만 힘들다’ 등 사소해서 더 쉽게 놓치는 일상의 지침들이다. 그는 “이 무례한 세상에 내가 나 자신에게라도 예의를 갖추고 싶다. 그 누구도 완벽한 태도를 갖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태도를 하나씩 익혀가는 것, 그게 우리 스스로에게 달아주는 훈장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유 작가는 경향신문 창간 71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정년퇴직한 여성 기자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창간 이후 반세기가 넘게 흐르는 동안 끝까지 회사를 다닌 여성 기자가 단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에는 그만큼 언론환경이 척박했다는 이야기다.
“결혼하고 3년간 전업주부를 하다가 입사했어요. 유인경이라는 이름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3년을 보내다 출근하니 처음엔 낯설면서도 내 책상과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어요. 이후에 치매 걸린 어머니 병간호에 육아, 회사일, 방송일까지 병행해야 했는데 돌아보면 참 열심히 고생하며 살았구나 싶어요. 손가락만 찔리면 딱 그것만 아픈데, 위에서는 물 벼락이 떨어지고 뒤에선 짱돌이 날아오다 보니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았던 시간이었어요. 워낙 나에게 유리한 면만 보는 성격인지라, 어떨 때는 일이 고민거리를 마취시켜주는 수단이기도 했어요.”
그는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지만, 여성이 그것을 선택할 때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는 딸에게 빨리 결혼하라는 얘기는 안 해요. 대신 ‘건어물녀’가 되지 말고 연애를 해서 낭만이란 걸 좀 가져보라고 말하는데,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이 사회가 문제죠. 아이를 안 낳으면 ‘저출산의 주범’이고, 애 낳고 일에 몰두하면 성공과 욕망에 눈이 먼 이기적인 여성이라고 매도하니까…. 저 역시 딸에게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수밖에 없는 엄마였는데, 하나하나 챙겨주지는 못했어도 의연함을 키워줬다고 생각해요. 준비물 못 챙겨줘도 기죽지 말라고 하고. 딸이 초등학교 때 ‘엄마 우리 반에 다섯 명이나 안 갖고 왔어’라고 하길래 웃어버렸는데. 서른 명은 챙겨왔다는 얘기거든요. 그때부터 아, 우리 딸은 소수에 대한 애정이 있는 애구나, 그렇게 위안했죠.(웃음)”
유 작가는 육아와 일 사이에서 매일같이 식은땀 나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 “엄마도 시기가 있다”면서 “저의 경우엔 딸아이가 대학에 가고 나서야 ‘베스트맘’이 됐던 것 같다. 매일매일이 전쟁이지만 조금 더 길게 보고, 죄책감과 분노와 억울함에 지배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나를 바꾸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해요”
유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낙천주의를 강조하지만, 직장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무작정 참고 버틸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낙천주의 역시 나를 더 ‘우아하게’ 지켜내는 수단이다. “남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나의 생각과 태도를 일단 바꾸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하기 때문”이다. 유 작가는 “30년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회사였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내 마음의 평화’였다”고 말한다.
“태도에 정답은 없어요. 그러나 태도 때문에 어떤 사람은 매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영웅이 되기도 합니다. 요새 대선후보 토론회만 봐도 토론이 끝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정책이나 주장보다 목사님, 화난 전교 1등, 낮술 한 아저씨 등 사람의 태도와 관련한 이미지에 가깝죠.
저 역시 직장생활을 돌아봤을 때,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기억나는 건 그 사람의 업무나 성과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태도였어요. 태도를 조금 바꿔서 행복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태도는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대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사람을 떠올릴 때 기억나는 건 그 사람의 업무나 성과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태도였어요. 태도를 조금 바꿔서 행복해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