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는 그저 떠도는 소문이나 유언비어와 달리 정식 기사와 같은 모습을 띠고 제도화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공공연하게 유통된다. 내용만 가짜일 뿐아니라 외형마저 진짜처럼 위장한 가짜인 것이다.
얼마 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하게 되면 구성될 내각 명단이라는 정보가 페이스북에 돌았다. 물론 내용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엄연한 선출직인 서울시장 자리에 경쟁 후보 안희정 지사를 임명한다는 초헌법적 발상도 모자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관련자인 고영태씨를 문화체육부 장관에 임명한다는 황당한 내용까지 덧칠한,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정보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명단에 올라온 인물들 개개인에 대한 기대 혹은 우려의 평가를 담은 제법 진지한 댓글들이 순식간에 쌓여갔다.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가짜 뉴스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 한 번을 더 생각해보기에 앞서 가짜 뉴스를 수용하고 즉각적으로 댓글을 달고 있었다.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서 가짜 뉴스들은 점점 더 기승을 부릴 기세다. 이미 지난해 미국 대선도 가짜 뉴스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다거나 힐러리가 국무부 장관 시절 이슬람 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는 등 온갖 가짜 뉴스가 미국 대선을 어지럽혔다. 이런 가짜 뉴스들은 주로 SNS를 중심으로 전파됐다.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가 미국 대선일을 앞둔 3개월간 페이스북에서 가장 널리 확산된 상위 20개 콘텐츠의 추천과 공유 및 댓글 건수를 조사해보니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를 135만건이나 앞질렀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가짜 뉴스의 내용이다.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반응을 이끌어 낸 최상위 콘텐츠 5개는 모두 트럼프에게 유리하고 힐러리에게 불리한 내용 일색이었다. 이쯤 되면 전문가들의 예상이나 여론조사 예측 결과를 뒤엎은 트럼프의 깜짝 승리에 가짜 뉴스의 영향력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섣불리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선도 가짜 뉴스의 폐해로부터 결코 안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대선도 여러 차례 홍역 치러
국내에서 가짜 뉴스가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부각된 것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이어진 촛불집회가 계기였다. 일부 극우 인터넷 언론 매체로부터 jtbc가 보도한 최순실 태블릿 PC가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논리가 기사의 형태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후 유명 해외 언론들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국내 보도 행태를 비판했다거나 일본에서 촛불집회를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는 등 사실 무근의 내용들이 그럴 듯한 뉴스의 형태로 둔갑해 인터넷 곳곳에 유포되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이 유력해지면서부터는 차기 대선후보들을 겨냥한 가짜 뉴스들이 대거 등장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출마는 유엔법 위반이라거나 문재인 후보의 집에 금괴 200톤이 숨겨져 있다는 등 수많은 가짜 뉴스들이 그동안 출현했으며, 지금도 어디선가 새로운 가짜 뉴스들이 누군가에 의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가짜 뉴스는 그저 떠도는 소문이나 유언비어와 달리 정식 기사와 같은 모습을 띠고 제도화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공공연하게 유통된다. 내용만 가짜일 뿐 아니라 외형마저 진짜처럼 위장한 가짜인 것이다. 그래서 가짜 뉴스는 소문이나 유언비어보다 한층 더 악랄하다. 가짜 뉴스는 대부분 특정 대상을 향한 증오와 혐오 혹은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런 내용일수록 한결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일 수밖에 없고,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어 낸다. 그래서 가짜 뉴스는 나쁜 언론의 대명사로 불리던 황색 저널리즘보다도 한층 더 악의적이다. 가짜 뉴스가 겨냥하는 대상 인물은 당연히 유명인들이다. 그런데 과거의 가짜 뉴스들이 주로 연예인을 제물로 삼았다면 탄핵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정국에서는 그 대상이 대선후보들을 비롯한 정치인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가짜 뉴스의 대상자를 빅데이터로 분석해보니 정치인이 63%, 정치적 사건 관련 인물이 21%를 차지했다고 한다. 정치 이슈를 둘러싼 가짜 뉴스 비율이 무려 84%나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정치 관련 가짜 뉴스들은 건강한 공론장 문화와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저해한다. 그래서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치명적인 위협 요인이다.
황색 저널리즘보다도 더 악의적
많은 전문가들은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을 ‘확증편향’으로 설명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을 받아들이고 이와 다른 정보는 거부함으로써 본래의 신념을 강화시키려 한다는 심리현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가짜 뉴스 전성시대를 온전히 다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확증편향은 가짜 뉴스 수용자의 태도에 대한 설명에만 유효할 뿐 가짜 뉴스 생산자의 동기나 목적까지 말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 중 ‘의제 설정 이론’이란 것이 있다. 미디어가 집중적으로 특정 이슈를 제시하면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그 이슈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또 ‘점화 효과 이론’이란 것도 있다. 미디어가 어떤 이슈에 대한 여러 판단 기준들 중 하나를 선택해 우선적으로 제시하여 대중의 여론을 의도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는 것이다. 마치 점화된 불길이 연쇄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에서 따온 개념이다.
결국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선동가에 다름 아니다. 이들이 뿌린 가짜 뉴스라는 씨앗은 확증편향 심리를 가진 수용자들을 토양으로 삼아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으며 왜곡된 신념이란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털은 가짜 뉴스에 ‘뉴스’라는 공적 지위를 부여하고, SNS는 가짜 뉴스를 빠르게 확산시키며, 인스턴트 메신저는 지인 네트워크를 통해 가짜 뉴스를 공동체의 공유물로 전환시킨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정치 선진국들은 선거를 전후해 가짜 뉴스의 퇴출을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가짜 뉴스 판별법을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가짜 뉴스의 차단 및 팩트 체크를 위한 전담기관 설립과 기술적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당장 코앞에 다가온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우리에게 이런 준비를 갖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 기사에 추천을 하고 공유를 하고 댓글을 달기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는 유권자의 지혜가 절실할 뿐이다. 가짜 뉴스의 전성시대, 이대로 놔두면 대선이 위험하다.
<민경배(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