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청년·소수자가 시민이 되는 사회](https://img.khan.co.kr/newsmaker/1220/20170404_80.jpg)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
박이대승 지음·오월의봄·1만6000원
“하, 이 놈 개념 없네.” 방금 이 말이 실제 목소리로 귓가에 들리는 듯한 경험을 한 사람, 분명 있을 것이다. 군대에서건 직장에서건 다소 폭력적인 어조를 품고 언급되는 이 ‘개념’이란 말을 다소 너그럽게 해석하면 모둠살이에 필요한 일종의 상식체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책이 말하는 ‘개념’도 흔히 쓰이는 이 말과 일면 통한다. 사전에 나오는 ‘분명하게 정의된 이론적 용어’라는 뜻보다는 ‘말과 의미 사이의 관계를 고정시키려는 경향’에 가깝다. 좀 어렵다면 저자가 대비시키는 ‘정치언어’라는 경향과 비교해 보자. ‘정치언어’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의미하는 바가 수시로 바뀌는 말이지만 ‘개념’은 한 사회 안에서 ‘표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념’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소수자가 소외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책의 강의는 이 ‘개념’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청년과 소수자, 시민에 관한 세 편의 강의가 이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개념이 아닌데도 너무나 흔히 개념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말이고, 소수자는 반대로 스스로 ‘개념’을 만들 길이 막혀 있어 다수자의 ‘표준’에 따라 항상 나머지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청년은 실업에 시달리니 불쌍하고, 소수자도 불쌍하거나 도움을 줘야 하거나 아니면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최소한이라도 합의된 ‘개념’을 만들지 못하고 통용되는 언어의 언저리만 맴돌 뿐이니 사회를 바꾸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혜받고 동정받는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와 동일한 시민일 때에만 개념도 함께 만들 수 있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강의의 내용이다.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을 보면 ‘개념’은 자연과학의 ‘공리’에 관한 생각을 바탕으로 구성된 듯도 하다. 그리고 철학자인 만큼 언어가 실제 생활에 미치는 효력을 강조하는 주장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하나의 ‘개념’이 다른 ‘개념’과 맞부딪치는 물리적 과정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