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미술관의 이유 있는 관객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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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의 연간 관람객 수는 10년 전 대비 약 57배 증가했다. 최소 100회 이상의 프로그램 매진 행렬을 기록했으며, 100만 이상의 SNS 및 멤버십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에만 무려 80만명이 이 두 공간을 찾아 숫자만 놓고 보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자생력 제로에 가까운 여타 미술관들의 입장에서 한국 대표 사립미술관으로 우뚝 선 이곳은 부러움과 호기심, 분석의 대상이다. 때문에 마케팅전략이나 운영방식에 대해 문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각종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해 적용하는 사례도 많다.

그렇다면 이들의 생존방식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선 명확한 ‘타깃’을 꼽을 수 있다. 관람객의 70~80%는 20~30대 젊은 층이다. 전시가 개최될 때마다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설 만큼 열성적인 데다 문화소비를 어색해 하지 않는 세대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낯설고도 신선한 작가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과감함, 사진 및 패션·디자인·건축을 아우르는 특화된 전시스타일, 비주얼세대를 파고드는 명료한 기획 역시 변별점이자 매력이다. 단순히 젊은 층의 의식과 취향을 건드리는 수준을 넘어 예술이라는 견고한 틀 속에 시대적 이슈를 담아내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Transfiguration, 2012, Courtesy of Gosha Rubchinskiy

Transfiguration, 2012, Courtesy of Gosha Rubchinskiy

Soar, Palermo, 2016, Courtesy of Paolo Raeli

Soar, Palermo, 2016, Courtesy of Paolo Raeli

Peepers, 2015, Courtesy of Ryan McGinley

Peepers, 2015, Courtesy of Ryan McGinley

하지만 조직의 유연한 문화생태야말로 해당 미술관들을 전시장 이상의 의미로 탈바꿈시키는 동력이다. 실제로 대림미술관, 디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는 대림문화재단에는 세 가지 독특한 문화가 있다. 첫 번째는 상하 개념에 앞서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수평적 환경과 원활한 소통구조다. 이는 ‘친근한 미술관’이라는 미션(mission)의 내부적 실천으로서, 기존 미술관이 지닌 근엄함을 상쇄하는 역할을 할 뿐더러 ‘대림’이라는 외적 가치를 결정짓는 촉매다.

두 번째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뒷받침하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인력양성 시스템이다. 재단 직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교육과 실무 실습에 임해야 하며, ‘크루’로 불리는 단기 근무 인력과 자원봉사자 역시 자신의 직무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이수해야만 미술관 인력으로 활동할 수 있다. 교육 내용은 크게 대림문화재단의 운영 철학과 각 팀의 업무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다만 ‘무작정 이 일을 하라’가 아니라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고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게 설계돼 있다는 게 흥미롭다.

세 번째는 기획과 운영전략의 에너지를 내부 인재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대림문화재단은 전체 직원의 50%를 자원봉사자 및 아르바이트, 인턴 출신에서 채용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미술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이야말로 ‘참신하고 독창적인 기획과 운영전략’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의 대림미술관은 이러한 여러 알고리즘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구성원이 성장해야 미술관도 성장한다는 믿음, 직원들의 신뢰, 철저한 교육과 실습, 바뀐 미의식을 반영한 색다른 콘텐츠, 기존 미술관 풍토를 뒤집는 발상 등이 모이고 고여 ‘줄서서 입장하는’ 현재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일각에선 전시가 다소 가볍다고 지적하지만 관객 드문 국내 미술관 현실을 감안하면 묵직하든 가붓하든 대림미술관과 디뮤지엄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한 측면이 있다. 우리 미술관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미술 향유 확장에 관한 해법 또한 읽을 수 있다. 그게 뭐든 호불호는 그 다음 문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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