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확장」 펴낸 김효연 고려대 정당법센터 연구원 “청소년 선거권은 세계적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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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연 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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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조기 대선이 확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선고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됐고, 60일 안에 다음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번 탄핵국면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박근혜 퇴진’을 외쳤던 청소년들에겐 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탄핵국면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논의가 확대됐고, 범여권 일각에서도 이에 호응하며 분위기는 급물살을 타는가 했지만 결국 오는 19대 대선은 ‘18세 선거권’이 적용되지 않은 채 치러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헌법과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아동·청소년에게도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시민의 확장>이라는 책을 통해 선거권을 포함한 아동·청소년의 시민권 확장 논의를 연구한 김효연 고려대 정당법센터 전임연구원(42)은 선거연령을 낮추지 못한 국회를 향해 “마땅히 해야 할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만이 19세 선거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찍부터 이 문제를 논의한 다른 나라들 가운데에는 16세까지 선거연령을 낮춘 오스트리아 같은 곳도 있다. 김 연구원은 “이미 한국도 헌법 제24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다만 그 법률을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19세에 맞춰놓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책에서 선거연령을 일정 연령 이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한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논리는 아동이나 청소년은 미성숙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는 건데, 성인이라도 치매 같은 질병에 걸리거나 알코올 등 약물에 취해서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아요. 반면 청소년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 습득과 활용능력이 성인보다도 높은 경우도 많죠.” 김 연구원은 더 나아가 ‘합리적 판단’이 무엇인지, 청소년은 과연 성인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민주주의에서 유권자 자신에게 득이 되는 후보를 뽑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죠. 이런 판단은 청소년이라도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선거연령에 제한을 두는 다른 나라에서도 ‘청소년은 합리적 판단능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논거는 폐기된 지 오래예요.”

해외에서도 아직까지 연령에 제한 없이 선거권을 인정하는 곳은 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18세를 선거연령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청소년의 선거권을 부모가 대신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데미니 투표(Demeny voting)’ 등 대안을 찾는 논의는 활발하다. 이미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과 장년층이 과도한 대표권을 가지는 반면 부담이 집중될 미래세대는 자신들 운명이 결정될 문제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문제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보장된 아동과 청소년의 시민권과 참정권에 주목하는 데서 시작해 줄곧 이들 연령층의 권리를 확대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경력을 쌓아왔다. “선거권이 확대된 역사를 보면 재산, 성별, 인종의 경계를 하나씩 무너뜨리고 확장됐죠. 이제 건강보험 예산을 비롯해 무수한 고령화 시대 문제들이 터져나오는 시점에서 마지막 남은 연령이라는 장벽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됐습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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