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탐색]프랑스 법정에 선 한국 비정규직](https://img.khan.co.kr/newsmaker/1218/20170321_80.jpg)
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
최은주 지음·갈라파고스 펴냄·1만5000원
저자 최은주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파리 주재 OECD 한국대표부에 채용돼 7년간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는 외교관들을 대신해 실질적인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원으로 현지 채용된 것이다. 이 책은 상사의 사내 폭력을 상부에 신고했다가 ‘괘씸죄’로 해고된 저자가 한국대표부를 상대로 프랑스 법정에서 벌인 부당해고 승소과정의 기록이다.
책의 제목처럼 프랑스 법원에서는 이 모든 것이 ‘불법’이었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인정하는 데까지는 무려 4년이 걸렸다. 프랑스 노동재판소는 사내 폭력과 부당해고에 대해 저자의 손을 들어주지만, 한국대표부는 면책특권을 내세우며 프랑스 법원이 명령한 배상금 지급을 거부한다. 수많은 민원과 항의가 있은 후에야 한국대표부는 2016년 결국 불어난 이자까지 국고를 털어 물어줬다.
저자가 고발한 한국대표부의 비정규직에 대한 온갖 ‘갑질’은 한국 엘리트 사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시에 프랑스 내 ‘작은 대한민국’, 즉 외교공관이라는 특수 공간에서 벌어진 이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두 사회의 노동에 대한 대조적인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프랑스에서 공부 중이었던 저자에게는 입사 당시 ‘외교증’ 말고도 ‘체류증’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한국 노동자가 되느냐, 프랑스 노동자가 되느냐의 의미였다.
외교증은 더 많은 연봉과 더 적은 세금을 보장해줬지만, 저자는 프랑스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체류증을 선택했다. 결국 저자가 거대한 ‘갑’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방패가 돼준 것은 고국의 법도, 외교증도 아닌 프랑스 노동법이었다는 점은 씁쓸함을 남긴다. 책의 시작은 고발이었지만, 5년에 걸친 저자의 분투기는 ‘우리 사회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