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S8 성공 여부에 명운 달려… 미국기업 하만 인수 당분간 멈출 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삼성그룹은 사상 초유의 ‘총수 부재’ 사태에 따른 경영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그동안 삼성은 다른 계획 없이 이 부회장의 불구속에 총력을 기울여 왔지만, 앞으로는 기소 이후 이 부회장의 재판과정에 공을 들이면서 동시에 각 계열사별로 산적한 사업과제들을 추스를 것으로 전망된다.
창립 79년 만에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이다. 그룹 경영의 구심점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어서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 결정을 비롯해 어떤 식으로든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2014년 쓰러진 뒤 3년째 와병 중이고,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말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면서 ‘이재용의 삼성’을 본격화하려는 시점에 구속이라는 악재를 맞게 된 상황이어서 삼성그룹 전반의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미전실 당분간 존속, CEO 집단체제 전망
우선 이 부회장을 대신해 미래전략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당분간은 이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아직까지 비상경영체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사장단 중심으로 경영을 꾸려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을 기해 미래전략실 해체방안 등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변수로 인해 당분간 미래전략실 중심의 그룹 경영이 불가피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6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해 “창업자인 선대 회장이 만든 것이고, (이건희) 회장이 유지해온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국민 여러분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삼성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삼성 미래전략실은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핵심 조직이다. 1959년 이병철 창업주 시절 회장 비서실에서 출발해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구조본), 2006년 전략기획실, 2010년 현재의 미래전략실로 명칭을 바꿔가며 6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법적 실체는 없는 조직이어서 책임이 없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 해체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미래전략실장을 맡고 있는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 등이 미래전략실의 핵심이지만 이들 역시 모두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 상황이어서 향후 이들의 신병 처리에 따라 미래전략실의 운신의 폭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역시 재판 준비와 출석 때문에 예전과 같은 사령탑 역할을 담당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미전실 중심의 의사결정체제를 이어가되,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계열사 현안은 각 사 전문경영인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 나가되, 굵직한 사안의 경우 관련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간 협의 등을 통해 풀어가고, 그룹 전반에 걸친 현안은 CEO 집단협의체 운영을 통해 논의해나가는 방식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전문경영인들이 회사를 꾸려가겠지만, 삼성의 미래를 결정할 큰 결단은 미뤄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 부회장이 조속히 경영 일선으로 복귀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계열사 실적 붕괴로 이어지진 않을 듯
우선 이 부회장이 활발히 추진해온 사업구조 재편, 이를 위한 M&A 등은 당분간 멈춰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비주력 사업이었던 방위산업·석유화학 부문을 두 차례에 걸친 빅딜을 통해 한화와 롯데에 매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했고, 바이오와 자동차 전장사업 등 새로운 영역에 집중했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한 2014년부터 약 3년간 15개의 해외 기업을 사들였다.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기업 스마트싱스를 시작으로 클라우드 관련 업체 조이언트,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 비브랩스 등을 사들였다. 80억 달러(약 9조6000억원)를 들여 인수하기로 한 미국의 전장기업 하만의 경우 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사례로는 최대 규모다.
우선 당장 하만 인수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하만은 2월 17일(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삼성전자와의 합병 건을 비롯한 총 4개의 안건에 대해 의결할 예정이다. 안건은 주주 50%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가결된다. 하만의 일부 주주들은 삼성전자가 낮은 가격에 하만을 인수한다고 판단하고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전자가 하만 이사회와 합의한 인수가격(주당 112달러)은 직전 거래일 종가보다 28%, 30일간의 평균 종가보다 37% 프리미엄을 얹은 가격인데, 하만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것도 싸다는 것이다. 지분 2.3%를 보유한 애틀랜틱 투자운용은 지난해 12월 “2015년 하만의 주가는 145달러를 넘겼고, 향후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며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예고했다. 지난달 초에는 소액주주들이 ‘추가제안 금지’ 조항과 과도한 위약수수료 등을 문제 삼아 하만 경영진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낸 바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주주들의 반대 움직임이 인수협상을 뒤엎을 정도로 타격을 주지는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KB증권 김동원 연구원은 “합병 관련 소송은 미국 상장사의 M&A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삼성·하만은 우호지분을 이미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M&A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는 3월 말 최초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는 것 역시 상반기 큰 과제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이 배터리 결함으로 단종된 이후 소비자 신뢰, 시장점유율 면에서 충격을 받은 터라 차기작의 성공에 삼성전자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주춤한 사이 오포, 비보 등 중국 제조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 갤럭시S8은 삼성이 비브랩스 이후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음성비서 ‘빅스비’가 탑재되고, 홈 버튼이 사라지고 디스플레이가 18:9.5에 달할 정도로 화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도 당분간은 어렵다.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은 이 부회장 입장에서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지만, 우선 재판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답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논의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미 삼성은 2014년부터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해왔다.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은 그 최종 단계로 거론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하만 인수 정도의 대규모 결정은 당분간 올스톱될 수밖에 없겠지만, 삼성의 기업 조직은 국내에서 가장 스마트한 그룹인 게 사실”이라며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고 하더라도 바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적이 붕괴될 정도의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윤주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run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