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결혼 실패와 마약 과다복용은 채 나이 50도 되지 않은 전설의 디바를 이승과 작별하게 했다. 유명인의 별세 소식은 그들과 함께 청춘을 보낸 세대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리운 마음에 눈시울이 먼저 붉어진다.
불행했던 사생활과 달리 음악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아이들을 노래하고, 사랑을 목놓아 부르며, 이별을 그리워했다. 흑인 특유의 사이음이 많은 창법은 웬만한 노래실력으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들었다. 이리저리 꺾어지며 오르내리는 현란한 선율의 전개는 화려하기까지 하다.

/ CJ E&M
휘트니 휴스턴의 명곡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바쁘다. 말 그대로 부지기수다. ‘Run to you’, ‘Greatest love of all’, ‘I have nothing’ 등을 듣다보면 팝 발라드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왜 만들어졌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영화음악 주제가로 쓰였던 ‘I will always love you’는 그야말로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
노랫말 중에 ‘앤드 아이이야(And I~)’의 발음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지칭하는 듯한 뉘앙스의 “웬 다이아~”로 들린다 해서 수많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 지금도 다시 들어보면 그 시절 인기가 떠올라 소름 돋는다.
휘트니 휴스턴은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대표작은 물론 그 이름도 유명한 <보디가드>다. 유명가수인 레이첼이 스토커 사생팬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자 무뚝뚝하지만 경험 많은 사설 보디가드가 그녀를 보호한다는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다. 이야기만 보면 직선적 구조에 단순한 스릴러물이지만, 배우들의 케미와 상징적인 이미지는 세간에 화제가 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남성미 물씬 풍기는 케빈 코스트너가 휘트니 휴스턴을 번쩍 안아들고 스모그 가득한 무대를 가로지르는 풍경은 뭇 여성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뮤지컬은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영화도 그랬지만, 무대 역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범죄자의 등장이 객석의 비명을 자아낼 정도로 박진감 있게 그려진다. 지난해부터 막을 올린 우리말 공연도 마찬가지다.
영화 원작의 무대용 뮤지컬을 뜻하는 무비컬의 재미를 쏠쏠히 담아낸다. 브로드웨이보다 국내에서 먼저 막을 올렸는데, 초연의 투자사로 참여한 CJ E&M이 국내 판권을 빠르게 확보해 한국 버전을 진행한 덕분이다. 마니아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백미는 역시 음악이다. 영국 무대에서는 <라이언 킹>의 암사자 날라 역과 <아이다>의 히로인으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헤더 헤들리가 나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워낙 고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뛰어난 가창력의 그녀는 ‘휘트니 휴스턴의 빙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우리말 무대에서는 가수 출신의 양파와 손승연이 인기 뮤지컬 여배우 정선아와 함께 트리플 캐스트로 등장한다. 노래만큼은 정말 만끽할 수 있다.
추억이 상품이 되고 향수와 복고도 멋스럽게 치장되는 것이 문화예술산업의 마술이다. 왕년의 흥행 콘텐츠를 가져다 고가의 문화상품으로 완성해 되파는 글로벌 뮤지컬 산업의 트렌드는 한류의 미래를 찾는 우리에게는 좋은 벤치마킹의 사례다. 곱씹어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