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테크 기업들은 트럼프에 저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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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2017년 1월 20일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한 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도, 미국 사회에서는 벌써부터 정치적 혼란과 대형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시되고 있는 걸 꼽자면, 미국에서는 일명 무슬림 금지 정책으로 통하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 7개 국가를 타깃으로 한 대통령 행정명령일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평소에는 지적재산권, 특허, 프라이버시, 망중립성 등 자신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정책이 아니면 공식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테크 기업들이 예상 밖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드 공유 회사 중 하나인 리프트는 미국의 민권단체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숙박 공유 회사인 에어비앤비는 다양성을 주제로 한 광고를 미국 최대의 스포츠 행사인 슈퍼볼 기간에 공개했다. 최근에는 애플, 구글 등을 포함한 100개에 달하는 테크 기업들이 무슬림 금지 정책에 대한 연방 항소법원 재판에 법적 조언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미국 테크 기업들이 트럼프에게 저항하는 걸까?

에어비앤비가 미국 슈퍼볼 기간에 공개한 ‘we accept’ 광고 일부. / 에어비엔비

에어비앤비가 미국 슈퍼볼 기간에 공개한 ‘we accept’ 광고 일부. / 에어비엔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 기업은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사업과 직접 관련된 정책이 아니면 크게 목소리를 높인 적이 많지 않다.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이들이 내세웠던 프레임은 ‘혁신’이었지 ‘다양성’은 아니었다. 사실 다양성으로 따진다면 극도로 소수의 아프리칸이나 라티노 아메리칸을 고용하는 실리콘밸리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아가 직접적인 이익만 따진다면 7개 국가를 타깃으로 하고, 난민이 주요 피해자가 된 이번 대통령 행정명령보다는 미국 하원에 상정되어 있는 H1-B 비자 개정법안이 이들에겐 훨씬 더 위협적이다. 이 법안은 H1-B 비자 해당자의 최저 임금을 연 13만 달러로 올리는 걸 골자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의 저항의 동기인가?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이들 테크 기업의 창업주, 고용인 중에 본인이 직접 이민자이거나 혹은 최근 이민자의 자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베이 에어리어 자체가 미국에서 가장 인종적으로 다양한 곳 중에 하나이다. 이런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앞으로도 고용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게 중요할 수 있다. 미국의 중서부나 남부에서는 여전히 흑백으로 나뉜 미국 사회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서부에서는, 특별히 베이 에어리아에서는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사는 게 이미 상식이 됐다. 나아가 미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선이 도시와 시골의 차이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우버, 리프트,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들은 이런 진보적 성향의 도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요한 파트너이자 고객이다. 따라서 이들 회사에겐 이들 파트너, 고객의 가치를 따라가 주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우버 같은 경우 뉴욕의 JFK 공항에서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우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인상된 요금을 청구했다가 20만명이 넘는 우버 이용자들이 우버 계정을 삭제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이런 테크 기업들의 움직임에 미지근한 행보를 보이는 건 주소비자층이 고소득층인 앨론 머스크(트럼프 행정부의 자문위원 중 한 명이기도 하다)가 수장인 테슬라와 스페이스X, 사업 특성상 미국 정부와 관련이 깊은 HP나 IBM, 그리고 오라클 등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재연(UC 버클리 정치학과 박사과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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