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는 직업이 변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교수가 된다는 것은 곧 성공을 의미한다. 제도권으로 들어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자 명함을 중시하는 미술판에선 작품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는 최고의 메리트이기도 하다.
허나 애초 창의적 영역에서 유비(流飛)하는 예술이 학습의 영역으로 전치(轉置)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 필자는 가끔 그 의문 따윈 사치일 만큼의 놀라운 현실을 본다. 그건 바로 대체 그들에게 있어 가르친다는 ‘용기’는 어디서 비롯되는가이다. 왜냐하면 그래도 명색이 교수임에도 아쓱할 만큼의 작품 수준과 곧잘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조를 헤아릴 경우 ‘저 정도 실력으로 어떻게 교수씩이나 됐을까’라는 궁금증은 쉽게 풀린다. 일례로 전체 미술인에 비하면 소수에 국한되는 교수작가는 예술가라 칭하기엔 과분한 정치작가처럼 미술판에 만연한 헤게모니를 둘러싼 치열한 투쟁을 거쳐 탄생한다.

서용선, 「포츠담회의」, 2012. 서용선 작가는 2008년 서울대 교수직을 스스로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결연한 선택을 했다. 그러 곤 현재까지 작업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다.
작품성은 열댓 개의 알고리즘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교수작가가 된다는 건 그야말로 인맥과 계파, 학력, 공모전 수상, 각종 심의위원 등 경력 만들기에 부단한 노력을 들인 결과요, 기존 구성원에 의한 보이지 않는 심사를 거치거나 유구무언의 과정을 인내한 보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각종 수상과 학위, 자리가 실력과 일치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귀한 시간에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소위 문무를 겸비한 예비인력들이 많다. 하지만 교수직을 희망하는 순간 거의 모든 것을 특정 체제에 맞게 리셋(reset)해야 한다. 그것이 케케묵은 교육환경일지라도 모른 척해야 하고, 학생 유치전에 동원되거나 불요불급한 행사와 모임에 쫓아다니며 학사관리를 비롯한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탓에 정작 교수가 돼도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갈수록 감각은 떨어지고 사고는 시대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에 몇몇 교수들은 순수한 창작세계를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부끄러움 없이 소싯적 배운 기법과 화론을 주구장창 우려먹으며 ‘철밥통’의 의지를 불태운다. 심지어 일부는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조차 이해 못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실기를 종용한다. 권력에 집착하는 태도, 진부하고 개성을 잃어버린 작품, 매너리즘에 젖은 미의식이 현재의 자신임을 모른 채 적폐의 재생산을 끝없이 대물림한다.
물론 측은한 처지는 온전히 학생들 몫이다. 비싼 등록금 내가며 새로운 모더니티와 동떨어진 세계를 배우고 우물 안 개구리마냥 그들의 얕은 철학을 깊게 습득한다. 동시대 미술의 지형을 빠르게 수용해 소화하는 학생들 입장에선 일부 교수들의 초라한 작품성, 시대착오적인 강의에 현실적 괴리와 불만을 느끼지만 우월적 지위를 지닌 교수들은 담장 내 권력이면서 미술계 기득권자이기에 사실상 저항하지 못한다. 좁디좁은 미술계에서 ‘학연’이라는 투명 끈은 졸업 후까지도 이어짐을 알기에 벗어날 곳도 마땅치 않다.
교육자인지 작가인지, 전문 교육자도 전업 창작자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 배워야 할 사람들이 가르치는 현실, 작품으로 평가받기보다는 인맥이나 학연, 지연에 얽매이는 시스템 속에서 어떤 자화상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부 교수작가들. 당연히 전부는 아니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지금도 캔버스에 예술 대신 권태로운 한국 미술교육의 민낯을 그려가고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