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 노트7 소동은 삼성의 기자회견 이후 일단락되어 가고 있다. 비싼 수업료이긴 하지만 후속작들에서 재발만 되지 않는다면 배터리의 위험함과 제조상 검수의 중요함을 전 세계에 알린 성과는 있다.
배터리는 전자제품 속 다른 부품의 성장세에 비해 늘 비교당하는 신세다. CPU나 디스플레이의 일취월장에 비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눈에 띄는 혁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초의 리튬이온 전지의 상용화가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초 소니에 의해서다. 시중에 건전지밖에 없던 시절을 거쳐 니켈 카드뮴, 니켈 수소 등을 쓰게 된 고도성장의 추억. 고도 경제성장도 주춤해지듯이 리튬이온과 함께 배터리의 성장도 주춤한 듯 보인다. 초기의 양산형 리튬이온전지인 18650(직경 18㎜, 길이 65㎜의 원통형 전지, 노트북이 두꺼웠던 시절 이 원통 여러 개를 묶어 배터리 팩을 만들곤 했다)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테슬라에는 이 원통전지가 7000개 들어간다. 시계가 멈춘 것일까.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대규모 충·방전 검사를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그렇지는 않다. 지루하지만 착실한 노력의 성과는 용량 변화로 드러나고 있다. 18650만 해도 모양은 여전히 똑같지만 껍데기나 내장재를 얇게 펴 만들어 용적률을 올리는 등의 노력으로 당초에 비해 2~3배의 용량 증가가 있었다. 이 정도면 무어의 법칙은 아니래도 진보가 없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충전 시 전압을 올려 더 많이 밀어넣고, 전압이 내려가도 방전할 수 있는 재료를 찾는 등 리튬이온은 극한까지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에너지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배터리의 힘이 세질수록 CPU의 출력을 여유롭게 높일 수 있다. 스카이레이크 이후의 최신 인텔 CPU로 예를 들자면 CPU가 놀고 있을 때와 풀 가동 시의 전력 소모량 차이는 20배나 된다. 또한 조금이라도 밀도를 높일 수 있다면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경량화 추세의 단말 시장에서 배터리의 용량을 높이려 어떤 무리라도 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리수의 대가는 의외로 크다. 그 욕심에 의한 약간의 부주의가 리튬이온을 폭약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튬이온의 원조 소니도 흑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미 2006년 델 노트북에 불이 붙어 배터리 1000만개를 회수한 바 있다. 양산 직후 소니의 공장에서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해 전지 100만개가 소실(燒失)돼 당국으로부터 위험물로 분류될 뻔한 적도 있다. 위험물 낙인이 붙었다면 리튬이온이 지금과 같은 트렌드가 되지는 못했을 테니, 운명을 가르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연구실에서는 공기전지, 전(全)고체전지 등 다양한 석유대체에너지가 개발 중이다. 배터리는 이제 21세기 문명의 생명선이다. 배터리가 바닥나지는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하다 보면 생활의 의지도 위축되게 마련이다. 전자기기의 배터리야 0%가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며 가방에 넣어 버리면 그저 아쉬움 뿐이지만, 고속도로 위의 전기차라면 이는 생사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수요는 모바일이 아닌 곳에서도 커질 것이다. 발전 공급과 수요의 격차도 마치 장판 깔 듯 배터리를 방바닥에 깔아 밸런싱할 수 있다. 심야전력을 충전해 뒀다가 낮에 쓰는 것이다. 전기가 들어가는 모든 곳에 CPU와 배터리가 들어가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는 그렇게 오고 있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