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비서, 드론과 로봇,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사물인터넷, 매년 계속되는 화질전쟁.’
얼마 전 끝난 ‘CES 2017’을 정의하는 키워드들이다. 연초에 시작하는 거대 행사라서 그런지 다양한 기사가 수없이 쏟아졌다. 키워드를 읽어내고 대응하기 위해 정신이 없다. 행사장에 다녀온 이들이 기고나 강연 등으로 많은 이들과 이 흐름 혹은 키워드를 공유하느라 바쁘다. 모두가 한 해를 읽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키워드들은 매년 새롭게 등장한다. 흐름이라기보다는 유행에 가깝다.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좀 더 긴 안목에서 좀 더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거장들의 글과 강연이 빛날 때가 있다.

<와어어드> 매거진 창업자 케빈 캘리 / 위키미디어
얼마 전 교보문고를 갔다가 케빈 켈리의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라는 번역 출간서를 만났다. 책에 손이 간 이유는 단 하나, 저자 때문이다. 케빈 캘리는 기술이 사회적인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30여년 동안 끊임없이 집중해온 <와이어드> 매거진의 창업자 겸 7년간 편집장을 지낸 인물이다. 유행이 아닌 거대한 흐름은 단기간에 읽어낼 수 없다.
기자는 2011년 5월 미국 출장길에서 우연치 않게 케빈 켈리의 강연을 들었다. 당시 그는 우리의 일상생활로 들어온 기술이 과연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강연했다. 그 당시 그가 제시한 키워드는 스크리닝(Screening), 상호작용(Interacting), 공유하기(Sharing), 흐르기(Flowing), 접속하기(Accessing, Not owning), 만들기(Generating, Not Copying) 등 6가지였다.
스크린은 우리의 일상생활 어느 곳에서나 접할 수 있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는 물론 중국 상하이에서도 스크린을 만날 수 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은 이제 사람 몸에 옷과 안경을 부착하는 형태로 다가왔다. 조금 더 지나면 더 긴밀히 결합될지도 모를 일이다.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예는 터치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 어른들은 마우스가 어디 있는지 찾았다. 아이들은? 그냥 눌렀다. 하나의 기기를 놓고도 그렇게 다르게 반응하고 대응한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몇 년 전부터 이야기해 왔다. 서로가 디지털 자료들을 공유하는 것도 일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건 우리나라처럼 유무선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 당연시되는 말이자 상황이다. 이제 새롭게 네트워크에 연결될 이들을 생각해보라. 이제 공유는 막 시작되었다. 접속 혹은 접근은 소유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할 때 바로 하면 된다. 소유권이 희미해지고 접근권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건 정보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자동차도 필요하면 공유한 걸 바로 접근해서 사용하면 된다.
이번 책은 예전의 6가지 중 만들기를 빼고 새롭게 7가지를 더했다. 무언가 되어가다(Becoming),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인지화하다(Cognifying), 나를 나답게 만들기 위해 걸러내다(Filtering), 섞일 수 없는 것을 뒤섞다(Remixing), 측정하고 기록해 흐름을 추적하다(Tracking), 가치를 만들어낼 무언가를 질문하다(Questioning), 오늘과 다른 새로운 미래를 시작하다(Beginning) 등이다.
그는 이런 12가지의 운동들이 홀로 작동하지 않고 서로 의존하고 서로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운동 혹은 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서 우리들을 어떤 종착지로 데려갈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또 이런 12가지의 힘은 궤적이지 운명은 아니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의 변화를, 기술이 우리의 일상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는지 볼 수 있다. 유행 속을 관통하는 본질에 조금은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도안구 테크수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