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적 젠더 규범에의 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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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탐색]이분법적 젠더 규범에의 도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권김현영·루인·류진희·정희진·한채윤 지음 교양인·1만2000원

‘양성평등’은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가부장제 비판이나 차별 반대의 바탕이 되는 여성주의의 주요 이념이자 전략이었다. 남녀평등, 이제는 당연해진 그 의제에 누가 의문을 가질까.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연구자인 저자들은 이 양성평등 담론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며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책의 문제의식은 간명하다. “양성평등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이 한국 사회의 성차별 인식을 결코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메갈리아부터 미러링까지, 지난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여혐·남혐 논란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페미니즘은 극단적인 여성 특권주의이고 지금 필요한 것은 양성평등’ 류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저자 정희진의 말대로 “양성평등이란 말처럼 반대 진영에 의해 완벽히 전유”된 언어도 드물었고, 여성들은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또다시 ‘증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여성운동이 내걸었던 양성평등이란 의제가 과연 여성들에게 저항 가능한 논리를 제공하고 있는지, 오히려 여성의 노력과 저항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저자들은 질문한다. 양성평등 담론이 여전히 성차별적인 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양성이라는 ‘규범적 이분법’을 넘어서면 젠더 규범 외부의 존재를 억압했던 권력의 실체가 드러난다. 책은 남녀로 구성된 ‘양성’ 개념은 허구이며 성별은 다양한 복수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인터섹스(간성)의 존재는 그 자체로 “양성 체계가 허구라는 가장 강력한 방증”이다.

기존의 통념을 뿌리째 흔드는 다소 도발적인 책의 제목은 단순히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향후 여성주의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저자들의 묵직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낡았지만, 여전히 미완의 과제인 양성평등 담론을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첨예한 젠더 이슈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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