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팔리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있다 사도 좋다.
2016년 자동차는 수출도 내수도 부진했다. 특히 국산차 내수판매 감소가 두드러졌다. 그나마 수입차는 잘 팔린 듯하지만, 수입차 성장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꺾였다. 자동차 내수시장 기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자축한 것이 엊그제인데, 쓸쓸한 연말이었다.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링카의 강력 후보로 자영업자의 발인 포터가 거론되는 중에, 이 트럭의 판매량조차도 작년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니 현재의 불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자동차산업이 맞이한 어두운 터널은 초입일 뿐이다. 비단 어수선한 시국이 경제마저 어둡게 해서만이 아니다. 차가 팔리지 않을 조건이 속속 갖춰졌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청년실업과 연이은 비혼 풍조 덕에 ‘마이카’를 장만할 가족이 재생산되지 않는다. 이미 올해 기준 자동차 등록대수는 2100만대가 넘어 도로는 포화상태. 품질이 좋아져서인지 차의 평균 나이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여기에 차량 소유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 부모의 차를 빌려 쓰거나, 차와 함께 늙어가며 고쳐 탈 수 있으면 고쳐 타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IT제품으로서의 자동차.' 자동차 업계마저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를 비전 선포 자리로 삼고 있는 추세다. 사진은 2016년 1월 CES에서 패러데이 퓨처가 공개한 전기차 FFZERO1. / 유투브 캡쳐
설령 구매력이 있더라도 지금은 과도기라는 신호를 소비자들은 읽고 있다. 자율주행이 있는 풍경이 광고에도 등장하고, 또 전기차·수소차 등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혁명이 가시화되면서, 평범한 내연기관을 이제 와서 사는 것이 주저된다. 자동차는 한 번 사면 기변이 쉽지 않은 내구성 소비재다.
소비자는 자동차도 이제 가전, 그 중에서도 IT 제품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오늘날 자동차 명차들은 모두 내연기관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를 소프트웨어와 모터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새로운 질서가 꾸려진다. 소프트웨어는 미국에서, 하드웨어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현재의 스마트폰처럼 자동차도 부품회사들별로 각자도생이 펼쳐진다. 자동차 그룹 내에서 플랫폼을 공유하며 수직 통합하던 이점이 예전 같지 않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1월 3일에서 8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다. 디트로이트 모터쇼도 1월 8일에서 22일까지 열린다. 작년부터 자동차업계의 비전 선포 장소는 이미 CES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 기존 내연기관을 탈피, 전자부품회사가 되려는 자동차 부품업계들이 CES를 우선하여 참가하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산업은 이제 ‘모빌리티 서비스’가 되어, 비트의 자유롭고 효율적인 이동을 완성시킨 IT의 힘으로 우리 신체의 자유롭고 효율적인 이동을 추구하려 하고 있다. 우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마치 시계를 차는 이유가 시간을 읽기 위함만은 아니듯, 나만의 명차를 찾는 이유가 이동하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1m도 이동시키지는 못해도 레이싱 게임과 자동차 장난감은 늘 인기 있듯이, 차에는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을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확신이 없다면 당장은 차를 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IT 제품은 늘 ‘내년’에 놀라운 제품이 나오니 말이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에디토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