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어여쁜 그림책
이상희, 최현미, 한미화, 김지은 지음 이봄·1만5800원
전쟁이 끝나고 돈도 상점도 없는 도시에 겨울이 찾아왔다. 엄마는 어린 딸 안나에게 예쁜 새 외투를 입히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다. 농부를 찾아가 금시계와 양털을 바꾸고, 램프로 물레질 삯을, 석류석 목걸이로 길쌈 삯을, 도자기 주전자로 재봉 삯을 지불한다. 엄마와 안나는 양들에게 깨끗한 풀을 먹이고, 산딸기를 모아 직접 실을 빨갛게 물들인다. 새 외투가 완성되자 엄마와 안나는 옷을 만드는 데 기여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농민과 장인들은 축하하며 파티를 벌인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 어느 도시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 <안나의 빨간 외투>의 내용이다.
안개가 드리운 숲속에 하얀 토끼와 까만 토끼가 산다. 어느 날 까만 토끼가 몹시 슬픈 표정을 짓는다. 이유를 묻는 하얀 토끼에게 망설이다 답한다. “너랑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 <토끼의 결혼식>은 ‘현실’의 무게감에 짓눌린 결혼의 본질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한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숲속 결혼식 풍경이 색채는 최대한 자제하되 털 한 올까지 살린 세밀한 필치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숲속에 사는 오렌지색 털과 회색 눈의 여우가 죽자, 동물들은 여우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동물들의 추모의식이 끝나자 여우가 죽은 자리에서 오렌지색 나무가 자란다. <여우나무>는 죽음과 애도, 치유의 과정을 다룬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시인, 동화작가, 출판평론가, 신문기자 4명이 그림책 44권을 소개한다. 그림책 속 세상은 어여쁘고 평화롭고 선하다. 하지만 일상사에서 겪는 갈등과 화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한 문장의 행간을 읽고 그림을 보며 몰입하는 경험은 어른들만을 위한 책에서 얻기 힘든 은밀한 공감과 감동을 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필요한 치유의 책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