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권위주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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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물리, 바이오 기술 등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경제 및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15~2020년 동안 신규 일자리는 200만개 증가하는 반면에 없어지는 일자리는 700만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따라 실제로는 더 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으며, 2020년 이후에는 그런 변화가 훨씬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 AllAboutLe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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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로 인해 엄청난 사회 변화가 발생한다는 건 이제 상수다. 미래를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명명하든 아니면 무한한 디지털 혁명의 시대라고 명명하든지 간에, 분명한 사실은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및 빅데이터 등의 핵심 디지털 기술이 산업구조와 노동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야 하며, 그것의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를 육성해야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가 맞는다고 해서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의 진정성과 정책 내용의 정당성이 확립되는 건 아니다. 구호를 강조하는 건 쉽다. 문제는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현 정권 내내 강조된 ‘창조경제’라는 용어의 경우에도, 대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창조적인 개인을 지원하고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명분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상태다. 그런데 국정농단 사태가 아니더라도 창조경제는 잘될 수 없는 운명을 태생적으로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권위주의(어떤 일에 있어서도 권위를 내세우거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는 창의성을 말살하는데, 현 정권은 권위주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혹자는 전체주의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다르게 표현해, 권위주의 조직에서 말단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해 일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잠깐 창의성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발휘된 창의성은 권위적이고 창의성이 없는 윗사람에 의해 폐기될 것이다(또는 그가 가로챌 것이다). 권위주의 조직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은 가장 권위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은 열일하며 권위에 저항하는 모든 걸 억압한다.

현 정권 들어 권위주의는 점점 더 거대해졌다. 개인이 가정, 학교, 조직, 사회에서 받는 압력은 나날이 커졌으며, 결국 그것이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며 자신의 처지와 국가를 비하하는 얘기들이 인터넷에 넘쳐나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창조경제 운운하는 것은, 나쁜 부모가 아이를 때리면서 “나는 널 사랑하고 너는 행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최근 국정농단 사태 때문에 창조경제의 약발이 다했다고 판단한 것인지, 정부는 좀비가 된 창조경제라는 용어 대신 은근슬쩍 4차 산업혁명으로 옮겨가고 있는 느낌이다. 단지 구호가 중요한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 특히 ‘최고의 소프트웨어’는 괴짜(geek)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들은 넘치는 자유 의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한 엄청난 집착, 기존 질서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와 환경을 갖추지 않고서 소프트웨어 산업을 성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가짜가 아닌 진짜를 기대해본다.

<류한석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 소장(ryu@peoplew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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