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다 살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공유할 줄이야.”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읽었던 지인의 글이다. 온 나라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로 대표되는 최측근들이 벌인 상상 초월 행동으로 패닉에 빠졌다. 분노와 허탈. 기사들을 쏟아내는 미디어는 특종 경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 기사들은 소셜 미디어나 메신저들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의 뉴스들을 접하고 있다.
매주 전국 각 도시와 지역에서 촛불을 든 이들을 목도할 수 있다. 100만명이 모인 행사에 필자는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내 비록 광장에서 촛불을 켜고 들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함께 그곳에 있겠소.” 이런 행동을 한 사람들은 필자 혼자가 아니었다. 행사에 참여하는 이들도 사진과 글, 심지어 현장 생중계까지 진행했다. 평상시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다. 온통 내 주위에는 이 행사에 간다는 이들이 많다. 갑자기 용기가 치솟지 않는가.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11월 19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세종로 일대를 가득 메운 채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미국 작가 엘리 플레이저(Eli Pariser)가 쓴 용어로, 그는 웹 기업들이 그들의 서비스를 우리의 개인적 성향에 맞추기 위해 노력할 때 위험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간단히 말해 필터링된 정보에 노출되면서 우리의 세계관에 도전적이거나 확장시킬 수 있는 정보에 노출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와 민주주의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검색’하는 게 아니라 큐레이터들이 특정한 의제가 담긴 글이나 이미지, 영상을 선별 혹은 만들어 공유한다. 모바일 기기와 소셜 미디어가 결합되면서 이런 정보 혹은 콘텐츠나 사건들은 삽시간에 내 지인들에게 전파되고 공유된다.
만약 이런 정치적인 집회가 부담스럽거나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어떤가. 이런 분위기에 쉽게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을까. 쉽지 않은 행동이다.
이번 미 대선이 끝나면서 또 하나 등장한 용어가 바로 ‘샤이 트럼프’다. 간단히 말하면 카페나 게시판 혹은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의견을 게재할 때 특정 인물 혹은 사건에 대해서 견해를 밝혔다가 주위 지인들로부터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견해를 밝히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
‘샤이 토리’도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용어는 1992년 영국 총선 직전 최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1%포인트 차이로 노동당에 지는 것으로 예측됐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7.6%포인트 차로 이긴 데서 나온 말이다. 샤이 트럼프도 유사하다. 인기 없는 정당이나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발언들에 대해서 대외적으로는 지지를 하지 않고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여론조사원에게도 실제 투표한 후보와 반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트럼프 당선 후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군 기를 배경으로 얼굴에 검은 색을 칠하고 환호성을 지르는 백인 학생 커플 사진을 자신 있게 올린 이들도 있다. 아마 지금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그럴지 모르겠다.
소셜은 다양한 일상을 공유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알고리즘’이 작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때로는 정보의 쏠림 혹은 편식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내 편의 이야기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신문과 책, 그리고 사람을 만나서 그 빈틈을 채우지 못한다면 소셜의 바람에 묻히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도안구 테크수다 대표>